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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쌀국수

추천해요

5년

최근 가장 만족스러웠던 식당은 바로 옥동식 역삼점. 생각지도 않게 맛있게 먹어서 과거 서교점에 남겼던 악평(?)이 무색해졌는데, 아마 업장의 컨디션 차이가 있지 않았나 소심하게 변명해본다. 역삼점은 확실히 신장개업한 곳이라 음식에 기합이 들어가 있었고, 접객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서교점에서 먹었을 때 국물에서 돼지고기 특유의 단맛보다 산미가 더 강하게 느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도통 재방문할 엄두를 못 냈는데 이번에야 제대로 주방에서 의도한대로의 맛을 먹은 듯하다. 말간 빛깔은 마찬가지였으나 좀 더 간간했고, 오미가 조화로워 완전히 다른 국물이었다. 국의 온도도 좀 더 뜨겁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 “참담한 맑음” 사태 이후로 조정을 하셨거나 일부러 특은 좀 더 데워서 내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방문에는 보통이 아닌 특을 먹었는데 옥동식의 국밥을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었다. 별 다른 차이가 있었던 건 아니고, 먹다가 문득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큰 대접을 비우느라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국물이 탁해지지 않고 끝까지 말간 빛깔을 유지했다. 주방의 의도대로 식사 경험이 통제되었달까. 단순히 밥에 국물을 말아 주는 게 아니라, 토렴을 위한 육수를 따로 끓이고 두 번에 걸쳐 토렴을 하여 밥의 전분기를 충분히 씻어내는 등 국물에 추가로 전분이 풀어지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다. 탕반 요리를 먹을 때 보통 국물(broth)에만 초점을 맞추어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밥이라는 장르에서 국물은 목적인 동시에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파스타의 소스가 면을 휘감고 평양냉면의 육수가 메밀면을 포용하듯 국밥의 국도 밥과 어떻게 결합해야 더 맛있을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옥동식의 국밥은 토렴을 통해 온도, 농도, 식감을 조정함으로써 국과 밥이 서로를 보완하여 각자의 장점을 이끌어 내는 한 그릇이었다. 밥 알곡에 국물이 배어들어 입 안에서 뭉치지 않고 국물 사이로 알알이 풀어지는 감각이 좋다. 불어터진 밥이라고 하기엔 조금 미안할 정도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 지은 밥이란 찰기가 있는 한 편 밥알이 뭉치지 않고 알곡 사이사이 적당한 공간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 온도가 떨어지면 밥알이 덩어리가 지면서 뻣뻣해 지는데, 이때 수분을 더하고 온도를 높여주면 밥알의 깨진 틈 사이로 육수가 흘러 들어가며 전분이 다시 말랑말랑해진다. 이 부드러우면서도 탱글탱글한 밥알의 식감 역시 밥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아닌가. 토렴을 하는 대신 손님이 직접 뜨거운 국에 갓 지은 밥을 말아먹는 방법도 있겠지만, 옥동식의 답안이 오답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오히려 변수를 제거하여 사용자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지 않는지. 영양과잉 시대인 오늘날, 오래 끓여 재료의 맛이 푹 우러난 국물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국물의 기능을 생각해야 할 때인데, 국밥이라는 형태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간단히 생각해보면 국물은 소스고 밥은 주식이다. 밥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 국물이며, 때문에 특유의 맑은 국물과 토렴된 밥은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국물이기에 비로소 전분기 없는 밥의 특징이 부각되며, 국물의 바디감을 포기하는 대신 국과 밥 두 요소가 대등하게 어우러진다. 평소 토렴의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아예 이렇게 맛의 경험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디자인되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직도 주방에서 약탕기를 사용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또 예전 방문 때는 고기를 굳이 건져내어 맵기만 한 고추지와 함께 먹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역삼점에선 고추지에서 산뜻한 시트러스 계열의 복합적인 풍미가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살짝 육향이 감도는 돼지고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대체 내가 지난 번에 먹은 음식은 뭐였지. 반대로 말하면 이 정도로 맛있지 않다면 굳이 번거롭게 분해해서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 갓김치 역시 저번에 먹었을 때보다 발효의 맛이 훨씬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다. 당시는 점심에 방문했고, 이번엔 저녁에 방문했던 지라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 다음 방문 때는 과연 이번만큼 맛있을지 살짝 의심이 간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던 지라 잔술(2,000원)을 한 잔 시켰다. 보리소주였는데 목넘김이 부드럽고 풍미가 구수하여 국밥의 담담한 국물과 아주 잘 어울렸다. 옥동식에서 식사하실 분들은 반드시 보리소주와 페어링하실 것을 권한다. 농부 분들에게 감사하게 되는 은혜로운 맛이다.

동봉관

서울 강남구 도곡로37길 38 1층

미식의별

죄송하지만 특을 먹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신 게 이해가 잘 안 돼서요. 장점이라고 느끼신 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 (그리고 어떤 단점을 보완한 것인지도) 글에서 읽어내기가 어렵네요. 죄송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운남쌀국수

@maindish1 악 제가 쓰다가 졸아서 올리다 말았습니다ㅠㅠ

미식의별

@AnnamKarl ㅋㅋㅋㅋㅋㅋ 완성 버전을 기대하겠습니다. ^^

미식의별

@AnnamKarl 결론(?)은 꼭 특이어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느끼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쓸데없이 까다로운 닝겐이라 죄송... ^^;) 글 잘 봤습니다. ㅎㅎ 저도 언제 다시 함 먹어봐야겠네요. ^^

운남쌀국수

@maindish1 네...😅 졸면서 잘못 쓴 듯해서 지우고 다시 썼습니다. 탕반 요리의 완성도는 역시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좌우되는 것 같고요. 통제의 중요성 정도를 느꼈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