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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네의 옛 모습을 세련된 형태로 가꾸어 낸 공간 세련된,이라는 형용사에 정확히 대응하는 영어 단어가 없는 것을 아는가? 인문학을 통해 자아탐구하는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번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열 가지 단어를 훈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놀라웠던 사실은, 다른 단어들은 모두 대응하는 영어 단어가 있지만, 가장 서구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던 ‘세련된’이라는 형용사만은, 한민족만이 묘사하는 아름다움의 형태이기에 정확히 대응하는 형용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고풍스러운, 혹은, 전형적인,이라는 뜻의 ‘Classic’이 이를 대변할 뿐이었다. 세련된 형태가 한민족이 대대로 추구해왔던 고유한 미(美)임을 상기하면, 그 대변자로서 굳이 ‘고전적인’이 선택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가베’라는 음료가 들어와 커피로 그 이름을 바꾸고 케잌과 함께 방방곡곡을 정복하는 동안, 우리의 음료와 다과는 점차 구식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한쪽에 소외되어갔다. 색다른 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유효기한이 다 되어갈 무렵에야, 아르누보 양식의 우아한 인테리어에 밀려나 있었던 한옥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탁자 위에 놓인 것은 여전히 커피와 케잌, 혹은 빵이다. 피자와 햄버거, 파스타, 스테이크에 열광했던 시기를 지나자, 그 식욕을 대신한 것은 의문이었다. 한민족이 즐겼던 다과와 음료를 파는 공간이, 왜 한국 땅에서 ‘특색’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그 특색의 자리를 나의 일상 한켠에 마련하기에는, 대부분이 그 맛과 멋을 가다듬은지 오래되어 나의 시간을 지불하기에 아깝거나, 현대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거부하여 내가 보내고 싶은 시간의 배경으로 삼기에 마땅하지 않은 곳이었다. 헌데 나의 아쉬움을 모두 해소하는 공간을 발견했다. 바로 이곳이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강정, 떡 등 예스러운 내용들이 정성스레 포장되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시청한 영상에서 배우 고현정 씨가 이곳 수정과를 가방에서 꺼내던 모습이 떠올라, ‘곶감 담은 수정과’를 주문했다. 달콤함과 쌉싸름함이라는 상반된 맛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일품이었다. 테이블마다 빙수 하나씩 놓여 있는 가운데 내 테이블만 허전한 것이 민망해 인절미 빙수를 주문했다. 우유 얼음을 쓰거나 연유를 곁들여 맛을 더하던 여타 빙수와는 다른 매콤함이 흥미로워 그 맛에 집중해보니, 수정과의 그것과 비슷했다. 다만, 녹차와 말차맛을 사랑하는지라 이후 재방문했을 때는 말차 빙수를 선택했는데, 인절미 빙수와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본연의 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팥에 밀려 얼음 맛은 배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시그니처인 흑임자 빙수를 누려보지 못하고 여름을 지나보낸 것이 무척 아쉽다. 도곡동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한 청년 사업가들의 공간이, 청담역 인근,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탈바꿈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네의 옛 모습을 우리네가 지향하던 형태로 끊임없이 가꾸어 낸 결실이, 우리네의 취향을 십분 저격했음을, 굳이 여러 말로 입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강정이 넘치는 집

서울 강남구 학동로 435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