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맘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네이버지도에서 보니 아마도 어딘가에서 보고 세이브해 둔 Flow Coffeeworks가 근처에 보이길래 커피를 맛보고 싶어 차를 두고 천천히 걸어감. 걸어가면서 보니 골목 군데군데에 뭔가 작은 가게들이 보이고 Flow Coffeeworks 앞에 다가가니 뭔가 어두컴컴한 느낌이어서 순간 쎄함.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불이 꺼져 있었음. 헐.. 네이버지도엔 딱히 주말에 휴일이라고 안 쓰여 있었지만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림. 다시 돌아오면서 보니 아까 지나오면서 봤던 가게 중에 테루아란 가게 앞에 세워진 입간판에 런치 코스가 15,000원이란 광고를 하길래 궁금해 망플을 열어보니 그래도 눈에 익은 망플러이신 졸리님의 리뷰가 보이고 언제까지 이 가격,이 구성일지 모르니 빨리 다녀오시라는 말 밖에는..이란 부분을 읽을 때쯤 뭔가 맘이 급해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가게문을 당기고 있음. 쉐맘에서 적당히 배 부르게 먹었지만 Flow Coffeeworks가 닫았고 이 동네에 또 언제 올지 모르겠어서 그냥 점심을 두 번 먹고 저녁을 굶기로 함. 가게는 아담해서 바 테이블만 있는데 아마도 졸리님 나이 또래일 것 같은 젊은 손님들이 앉아 있고 남은 자리엔 먼저 앉았던 손님들이 먹고 나간 후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있어서 일단 자리에 앉아 지금 식사가 가능한지 아니면 다음번에 방문하는게 나은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셔서 너무 바빠 보이시는 오너셰프분께 문의를 하니 가능한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데 괜찮으신지 물으셔서 그냥 먹겠다고 답함. 오너셰프분은 오픈 주방에서 런치 코스에 나오는 다양한 것들을 혼자 준비하시느라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심. 그 와중에 내가 앉은 테이블도 다시 세팅을 해주시고 레몬이 들어간 피처에서 물을 따라 건네주심. 따뜻한 제대로 된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혹시 냄새가 나나 살짝 맡아봤지만 전혀 아니어서 진짜인 느낌이어서 엉터리 싸구련데 겉만 번지지르한 가게는 아니구나 함. 손님별로 순서에 맞춰 코스 음식을 내어 주시고 런치 코스 안내를 해 주시면서 스프로는 왼두콩 스프, 3가지 전채요리로는 버섯이 들어간 매쉬드 포테이토, 아스파라거스가 올라간 당근 퓨레, 테리야키소스의 계란찜, 메인 전에 입가심으로 참외 스시, 메인으로는 생면으로 조리하는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 파스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면 된다고 하셔서 둘 다 좋아 어떤게 더 나은지 여쭤보니 크림 파스타를 말씀하셔서 크림 파스타를 부탁드리고, 디저트로는 크렘브륄레가 나온다고 설명해주심. 속으로 그런데 15,000원인 건가 함. 조금 기다리니 드디어 완두콩 스프와 바게트 빵 한 조각이 소금이 뿌려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같이 나왔는데 바게트 빵은 하루 이상 저온발효한 반죽으로 만든 바게트 빵이라고 설명해 주심. 완두콩 스프가 든 아담한 도기 냄비는 분위기도 르크루제나 스타우브 처럼 프랑스 느낌 뿜뿜이고 싸구려 느낌은 1도 없어 여기 뭐야?함. 뚜껑을 열어보니 채 썬 이태리 파슬리가 올려지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이 뿌려진 완두콩 스프의 비쥬얼도 싼 느낌 1도 없이 나름 근사해서 다시 한 번 놀라고 맛을 보니 완두콩의 향 뿜뿜이면서 간은 적당히 짭짤해서 좋아 또 다시 놀람. 바게트 빵도 손으로 잡고 찢으니 겉은 적당히 딱딱하면서 안은 떡 처럼 쫀득함이 느껴져 잘은 모르지만 흔한 바게트 빵과는 느낌이 달라 저온발효한 반죽으로 구우셨다더니 진짠가보다 함. 올리브 오일엔 소금도 뿌려져 있어 푹 찍어 먹으니 짭짤해 좋음. 한 조각 더 달래고 싶었지만 혼자서 워낙 바쁘셔서 참음. 조금 기다리니 3가지 전채요리가 나오고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주시면서 버섯이 들어간 매쉬드 포테이토, 아스파라거스가 올라간 당근 퓨레, 테리야키 소스의 계란찜 순서로 드시면 된다고 안내해 주심. 며칠전인가 유튜브에서 우리집 앞이어서 가족과 자주 갔었던 예전 리츠칼튼 중식당인 취홍이 르메르디앙으로 바뀌고서 취홍에서 허우로 바꼈는데 거기서 제일 비싼 코스 메뉴를 먹는 영상을 봤는데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특히나 전채 요리의 비쥬얼이나 허접한 퀄리티에 놀랐었는데 여기껀 그런 허접함없이 가게 분위기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닐지 몰라도 음식의 비쥬얼이나 분위기는 오히려 진짜 고급 레스토랑의 것이어서 르메르디앙 허우와 반대인 느낌임. 안내해 주신 대로 버섯이 들어간 매쉬드 포테이토를 맛을 보니 트러플 오일이 뿌려져 있어 트러플 오일 향이 좋고 매쉬드 포테이토는 흔한 매쉬드 포테이토와는 좀 달리 간 마가 조금 들어갔는지 끈끈되직하고 들어있는 버섯은 표고버섯인 것 같은데 그래선지 뭔가 일본음식과의 퓨전 느낌임. 다음으로 아스파라거스가 올라간 당근 퓨레를 맛을 보니 아스파라거스는 딱딱하고 질긴 부분 1도 없이 적당히 아삭부드럽게 잘 조리되어 식감과 향이 좋고 빨간 걸 씹으니 말린 자두같이 적당히 달달하면서 식감이 좋아 뭔지 여쭤보니 말린 방울 토마토라고 하시는데 방울 토마토를 적당히 말리면 이렇게 다르구나 했고 당근퓨레는 당근 자체의 은은한 달달함이 좋음. 마지막인 테리야키 소스의 계란찜은 와사비가 조금 올라가 있는데 처음엔 그냥 간장인 줄 알고 푹 찍어 맛을 봤는데 테리야키 소스 맛이어서 아, 테리야키 소스였지하고, 계란찜은 아주 촉촉하면서 부드럽진 않고 살짝 탄탄하면서 살짝 드라이해서 카스테라의 느낌임. 다음으로는 메인 요리인 크림 파스타 전에 입가심으로 참외스시를 내어주셔서 이 가게는 서양음식과 일본음식 퓨전요리 가게구나 함. 참외스시는 비니거가 들어갔는지 상큼하게 시큼하면서 아래엔 샤리도 있어 처음 맛보는 거라 새로움. 쉐맘에서의 돈카레에 더해 이미 스프나 전채로도 배가 적당히 차서 적당히 적은 양의 느낌인 크림 파스타가 나와서 더 반가웠고 역시나 이태리 파슬리와 그라나파다노 치즈라고 설명해 주신 파마산 치즈와 비슷한 느낌의 치즈가 뿌려지고 화이트 라구 파스타의 느낌으로 간 고기도 제법 듬뿍 들어있는데 맛을 보니 생면이어선지 쫀득하고 적당히 짭짤하고 아까 다른 손님한테 설명하실때 보니 미소 베이스의 크림소스라고 하시더니 미소맛도 은은히 느껴지면서 뒤에선 단맛도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론 그냥 크림 파스타가 더 좋게 느껴져서 명란 파스타나 간장 파스타 같이 확실히 일본 느낌 뿜뿜인 것도 아닌데 굳이 일본 된장인 미소가 베이스로 들어갈 필요가 있나 생각되서 차라리 토마토 파스타를 선택했을걸 했지만 그게 이 가게의 다른 가게와의 차이점이고 오너셰프분의 취향이신가 보다 함. 마지막으로 설탕 레이어가 제법 도톰한 편이었던 크렘 브륄레를 끝으로 런치 코스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남. 전체적으로 원래 가려던 커피 가게가 닫았어서 지나던 길에 궁금해 급방문해 봤는데 음식의 비쥬얼이나 퀄리티가 고급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는 느낌으로 그렇다고 아주 고급 레스토랑의 미묘한 고급 퀄리티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뛰어났고 다만 그런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다 여기처럼 조리를 할텐데 적나라한 조리과정이 다 노출되다보니 뭔가 더 고급으로 조리했을 것 같은 상상이 안 되는 건 살짝 아쉬웠지만 이런 훌륭한 런치코스가 단돈 15,000원이라니 지금도 안 믿기는 느낌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똑같이 나왔다면 아마 쉽게 5-6만원 이상은 됐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경험이었음.
테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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