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술을 장르별로 갖춘 한식 주점 깔끔한 한식을 안주로 내는 주점이 점점 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한식 주점은 대개 너무 너저분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좀 모양에 신경쓴 한식 주점은 주류는 와인을 주로 내는 바 혹은 식당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음식에 우리나라 술 만 갖춘 세련된 한식 주점들이 생겨 좋다. 선술집하면 한식주점보다 이자카야를, 우리나라 약주보다는 사케나 와인이 더 보편적이고 자주 찾는 시대에, 이런 한식 주점의 성업은 식객의 한 명에게도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태원의 지하 공간이지만 층고가 높아 답답함을 해소한다. 많은 좌석이 주방을 바라보는 일렬 스쿨식 배치가 독특하다. 우리나라 술을 막걸리류, 소주류, 과실주, 청주류 등으로 그룹지어 놓았고 다양한 우리나라 술을 맛보기에 좋은 라인업을 갖췄다. 내는 안주의 라인업은 매우 간단하다.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리라. 첫 눈에 띄는 메뉴는 육회. 설깃살을 사용하고 땅콩과 잣 등의 견과류와 버무려 노른자 위에 올렸다. 한식의 까르파쵸. 우리 그룹은 우렁이쌀로 만든 약주로 매칭했다. 미나리를 빼곡히 기름에 부쳐 보리새우를 올린 미나리전. 피자처럼 칼같이 조각으로 잘라 놔 나눠 먹기에 불편함이 없다. 유자 넣은 초간장이 컨디먼츠. 막걸리가 답이나 유명한 토끼소주를 페어링. 보드카맛나는 껄쭉한 소주가 코끝에 향기롭다. 큼직한 제주 백돼지로 만든 수육과 새우젓, 김치와 추가한 생굴. 누가 뭐래도 이건 소주. 토끼와 이어진 서울의 밤. 매실향이 나는 소주. 이건 닭껍질 구이와 바톤을 이어 나간다. 대식 그룹인 걸 눈치챈 쉐프가 멍게를 고추장양념해 올린 스시를 감태로 싸서 하나씩 on the house 로 내었다. 추가 주문 해 달란 얘기다. 큰 아삭이 고추안에 쇠고기 돼지고기 다져 넣은 소를 넣고 튀겨낸 고추튀김이 배맛나는 로아 소주와 베리맛 나는 만월을 상대했다. 복분자의 향을 잘 살린 부드러운 소주. 다양한 안주와 우리나라 술의 조합이 참 무궁무진하다. 와인 못지 않다. 전복올린 칼비빔면을 조금씩 나누고 파티는 끝을 향해 달려 갔다. 외국 친구들 서울에 오면 매번 한옥에, 매번 불고기와 신선로로 식상했는데, 이태원 힙한 공간에 데리고 와 한식 안주에 우리나라 술로 곤드레만드레로 만들어 놔야겠다. 메뉴판에 성게소를 우니라고 쓴 건 매직으로 고쳐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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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가길 12 청명빌딩 지하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