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청담동의 장터 분위기 식당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호텔 화장실에서는 손을 더 잘 씻는다든지, 정장을 잘 갖춰 입으면 자세가 좋아지는 것들이 흔한 예이다. 식당도 마찬가지. 세련되고 조용한 실내와 품위있는 음식을 내는 곳은 공기도 다른 것 같다. 메뉴나 음식이 보편적이고 좀 허술한 구석이 보이면 손님들도 마음을 풀어 놓는다. 시끌벅적 장터 같아진다. 부티크들이 널린 청담동의 분위기 반전 식당. 이 집의 킥은 음식이 아니라 벽에 덕지덕지 붙인 메뉴들이다. 벽을 어지럽혀 손님들의 긴장을 일시에 풀어 놓는다. 싱가폴 래플즈호텔 바의 바닥에 버리는 땅콩껍질처럼. 뻘건 혹은 검은, 아무렇게나 휘갈긴 것 같은 촌스런 칼리그라피. 청담동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러나 잘 보라. 이 벽면 메뉴는 어느 손님이나 어느 방향에서나 보게 했고, 눈에 들어오면 숨은 그림 찾기하듯 여기저기 읽어보다, 먹고 싶은 접시를 발견케 하여, 기어코 추가주문하게 만드는 숨은 의도가 숨어있다. 기술이다. 시끄러운 장터 속에서 취담을 나누다 다시 메뉴판 달라고 하는 불편을 제거한 허접 속의 세련. 나도 넘어가서 요리 두 개를 추가했다. 당한 것인가. 손님들의 긴장을 확 풀어 놓는 기막힌 환경을 주인이 잘 계산하여 만든 것이다. 애초에는 청담스타일로, 인쇄된 예쁜 종이 메뉴판과 깨끗한 벽으로 시작했을 지 모르지만 아마 한남동 본점 스타일의 벽면 메뉴로 바꾸는데는 얼마 긴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리라. 음식은 모두가 다 아는, 모두가 흔히 먹고 마시는, 그런 맛 그런 요리들이다. 시장 메뉴 다 있다. 9.5 모듬회에 방어와 연어만 있다고하고, 6시반에갔는데 도미회는 아예 없다고 하니 좋은 음식을 싸게 내려는 성의는 없다. 짐작하건대 임대료가 많이 비싼 모양이다 아니면 게으르거나. 이층 서버의 자연스런 손님응대는 칭찬할만하다. 정작 북엇국이 필요한 건 이 아침이다.
한남북엇국
서울 강남구 삼성로149길 27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