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장은 언제나 검은 그릇에 담는다. 초겨울이 되면 맛있고 따뜻한 국물요리가 생각나게 마련. 국물요리는 우리나라가 최고지만 중국요리로는 뭐가 있을까. 짬뽕도 좋지만 불도장. 끓이는 냄새를 맡고 불가의 담을 넘었다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름. 샥스핀, 송이, 오골계, 사슴다리힘줄, 잉어부레, 전복, 해마, 죽순 관자, 해삼 등의 진귀한 재료로 고아낸 국물.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광둥요리의 대표 중 하나다. 국물은 탁하지 않고 기름기는 없다. 맑은 국물은 언제나 검은 그릇에 담아낸다. 밝은 바탕 그릇은 국물이 가벼워 보인다. 불도장도 어느 집에서나 검은 합에 내는 것은 더 깊은 맛의 인상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가이세키의 스이모노도 언제나 검은 바탕의 완에 내는 이유다. 냉면도 싸구려 스텐레스 그릇 말고 어두운 색 바탕 도자에 담아내면 우아하지 않을까. 이렇게 내는 냉면은 없나? 냉면 육수는 그리 열심히 논하면서 불도장 국물 못지 않은 냉면육수를 담아내는 그릇을 논한 글은 보지 못했다. 둔한 혀로 세간의 불도장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도림의 불도장은 맛있다. 해마와 죽순 빼고는 거의 다 들어있다. 국물은 적당한 온도.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다. 불도장 그릇은 반드시 뚜껑이 있다. 첫 숟갈의 인상이 중요한데 사람도 마찬가지. 적당한 간과 온도 그리고 감칠 맛. 적절한 국물의 비율. 불도장 몇 숟갈로 테이블엔 데칼코마니 같은 미소가 번진다. 마음에 드는 재료부터 꺼내어 먹지만 이미 단물 다 빠진 후, 건더기는 분명 조연이다. 불도장을 반쯤 먹은 후 두반장을 청해 살짝 넣어도 좋지만 과한 건 언제나 금물. 불도장 한 그릇 다 먹으면 그걸로도 배부르다. 나는 반 쯤 먹게 될 즈음 항상 불도장에 밥을 말거나 국수를 말아 먹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한다. 그냥 훌훌 먹기는 아까운 국물. 하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불도장밥 불도장면. ㅎ. 분위기 깨겠지. 아님 초반에 배가 터지거나. 맛있고 좋은데 비싼게 흠. 비싼 코스요리에만 불도장이 들어있다. 교대역 후젠무이에서는 비교적 쉽게 불도장을 접하곤 했는데 문을 닫아 아쉽다. 다시 열면 바로 달려가리라. 도림의 또 다른 킥 메뉴. 짜장면. 짜지 않고 까맣지 않고, 느끼하지 않고 맛깔나게 볶은, 양파 많지만 달지 않은 짜장소스가 일품이다. 어제 흠을 잡자면 전채요리가 좀 그랬다. 너무 가벼워 보이는 구성. 광둥요리 답지 않다.마구로라니. 마구만든 티가 난다. 코스의 첫인상인데. 후식으로 나온 배숙은 따뜻한 계절감 넘치는 마무리였다. 그리고 홀수의 요리로 구성된 중식 코스요리는 평생 처음 봤다. 허나 도림의 뷰는 중식당 중 최고다. 한강 야경을 보며 따뜻한 국물 불도장에 위로를 받았다.
도림 더 칸톤 테이블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40 롯데호텔 월드 3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