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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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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작가의 전작이자 데뷔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정말 너무 재밌게 읽고 난 후로,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장강명과 장류진 두 장가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두 분 다 현실을 명징하게 직조(ㅋㅋ)하면서도, 지나친 감상주의는 빼고 건조하면서도 위트있게 글을 휘리릭 써내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게 제 취향과 잘 맞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장류진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것의 소재가 청년들의 가상화폐 투자라는 것을 들었을 때, 이야 이번에도 범상한 주제로 범상치 않은 독후감을 안겨주겠구나! 싶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어내려갔습니다. 물론 책은 재미있었습니다. 짧은 분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펼친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어요.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세 주인공들에게도 각자 공감이 되는 포인트들이 있었고,  가상화폐 투자 붐은 낯선 것이 아니기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의 감상은, 글쎄,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였습니다. 재밌게 읽었던 전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대한민국 청년 세대들의 여러 단상을 짧은 단편으로 묶어냈습니다. 그래서 짧은 호흡으로 다양한 청년 세태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거기에서 뭔가 인사이트를 얻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맞아맞아 나도 이 때 이랬지, 맞아맞아 청년들의 현실이 정말 이렇지, 하고 공감을 하며 읽었던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3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 되고 나니, 여기에서는 어떤 인사이트를 발견해야한다는 정말이지 응당 그래야 한다는 기제가 자연스럽게 발동됐는데, 그것을 찾아내지 못 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가상화폐 투자 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현실? 사회가 강요하는 연애 가치관 대신 본인만의 취향을 찾아내고 뚝심있게 지켜내는 것에 대한 응원? 이런 이야기들은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이미 기사나, 에세이나, 다른 아티클에서도 몇 번 보아왔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응 그렇지, 하고 공감은 하게 되면서도 그래서 뭐? 여기서 더 나아가는 이야기는 없어? 하고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런 기대에 맥을 빠지게 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전개도 한 몫을 했겠지요. '가상화폐 투자에 빠진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소재를 들었을 때 결말을 두 가지로 나뉘겠지만 중간 과정을 이렇겠구나 하고 확신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1) 주변 선구자(?)의 권유로 시작한다 (2) 초기 떡상(?) 그래프를 보고 환호한다 (3) 그 와중에 등락을 거듭하는 시세를 보고 불안해한다. 마지막 결론은 (4)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다 혹은 (4) 엄청난 손절을 하고 허망해한다 둘 중에 하나가 되겠지라고 짐작했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소재 자체가 주는, 어느 정도 뻔한 전개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뭐 우야든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고, 공감가는 구절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가상화폐 투자를 하지 않는 저로서는 지송이가 열변을 하는 대목에서 사진을 찍어뒀어요. "우리 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묘하게 박탈감이 느껴져서 불쾌하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큰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가까이서 듣다보니 자신은 그냥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뭔가를 크게 잃은 기분이 든다는 거였다. 가상화폐에 관심 없는 내가 바보인가? 가만히 있는 사이에 손해를 보고있나? 하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스쳐지나간다고 했다." (119) 제 생각이 정확히 지송이와 일치했기 때문에 맞아맞아 하고 사진을 찍어뒀지만, 사실 이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것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풀어둔 것에 그쳤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거참 아쉬움이 많이 드는, 제 페이보릿 장가의 두번째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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