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무릎에 눕히고 6분> 시작은 결혼식을 3주 앞두고 떠난 가족 여행이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 다들 적당히 잠들려는 분위기에서, 언니가 새로운 미용 기기를 샀다며 나와 엄마를 침대에 눕혔다. 얼굴에 문지르면 리프팅, 미백, 탄력 등 하여간 멋진 효과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전자 기기였다. 언니는 영양 크림을 잔뜩 바른 나와 엄마의 얼굴에 수 분 동안 그 미용 기기를 문지르고, 진정 크림을 바르고, 마지막에는 히노끼 사우나가 떠오르는 나무 냄새의 젤을 승모근에 바르는 초호화 관리 코스를 선물했다. 언니는 내 결혼이 확정되고 난 직후 이따금 울었고 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자주 울곤 했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나 역시 자꾸 눈물이 흘렀다는 거였다. 마침 TV에서는 연예인 언니와 일반인 여동생의 관찰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결혼하는 여동생에게 언니가 이런 저런 지원과 응원을 해줬다는 내용에 패널들이 감동을 받는 장면이었다. 어쩜 타이밍이 이러냐고 언니와 나는 울면서 웃었다. 엄마는 언니에게 그만 울라며 구박했다. 사실 언니가 나를 보며 우는 걸 볼 때 마다 그랬다. 그 뒤로 언니는 나와 방에 둘이 있을 때만 몰래 울고 엄마가 온다 싶으면 얼른 눈물을 훔쳤다.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언니는 해외 출장을 떠났다. 엄마는 지난번 관리 코스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언니가 없는 동안 내게 그 코스를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결혼을 앞두고 일이주 남짓한 기간 동안 엄마와 나 사이에 짧은 루틴이 하나 생겼다. 매일 밤 거실 소파에 앉은 내 무릎 위로 엄마가 눕고, 엄마의 관자놀이와 팔자주름과 볼 같은 곳들에 미용 기기를 문지르는 의식. 부스터 모드로 3분, MC 모드로 3분, 총 6분의 시간 동안. 엄마의 얼굴에 핀 검버섯과 주름을 가까이서 보고 측은해지는 마음···같은 건 없었다. 평소 썬크림을 열심히 바른 덕인지 엄마는 검버섯과 기미가 없는 편이었고, 얼마 전 생전 처음으로 받은 70만 원짜리 리프팅 시술로 주름도 많이 옅어져 있었다. 사실 내가 걱정한 건 따로 있었다. 여느 현대인처럼 도파민 중독자가 된 내가 6분 동안이나 디지털 세상과 떨어진 상태로 엄마의 얼굴만 바라본 채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유튜브도 못 보고 인스타그램도 못 보고 밀리의서재도 못 보고, 양 손을 미용 기기에 묶인 채로 6분을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보낼 수 있을까? 다행히 걱정은 첫 날 깨졌다. 소파에 앉은 나와 내 위에 누운 엄마는 생각보다 할 게 많았던 것이다. 우리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맞장구도 쳐야 하고 내 결혼 준비에 대한 토론도 해야 하고 언니의 연애에 대한 뒷이야기도 해야 했다. “지금 TV에 나오는 저 양반이, 왼쪽 팔을 아예 못 써서 오른쪽 팔로만 그림을 그린대. 엄마는 지난번 방송에서 봤어. 저거는 재방송이네. 하여간 사람의 정신력이란 게 대단해.” “청첩장 모임은 이제 끝났니? 엄마 때는 그런 건 없었는데 요즘은 희한한 게 생겼더라. 몇 명이나 밥 사먹였니? 그거 그렇게 다 하고 나면 축의금 받아도 말짱 도루묵 되겠어.” “네 언니는 요새 남자친구랑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디? 요새 바빠서 잘 못 만나는 것 같던데 어쩌는가 몰라. 그래도 얘기 들어보면 애는 착해 보이데. 술만 좀 줄이면 애가 참 괜찮겠는데.” 두런두런. 여러 사전의 정의를 나 좋을 대로 종합하자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로'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는 소리 또는 모양을 일컫는 말이다. 엄마와 내가 6분 동안 나누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새를 이 이상 적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까만 밤중의 거실에서 나지막하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계속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이 모양새를! 도파민 없는 6분을 걱정했던 내가 괘씸하고도 우습게 느껴졌다. 결혼식을 앞두고 이런 의식이 생기다니, 정말 의미 있고 따숩군 그래. 시집 가기 전 원가족과 보내는 집에서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손색이 없어. 못내 뿌듯함까지 느끼면서. 그리고 여느 때처럼 거실에서 엄마의 얼굴을 작은 마이크 같은 그것으로 문지르던 날이었다. 엄마가 '나지막히' 말을 꺼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결혼식을 닷새 앞둔 화요일이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진짜 피부 관리사라도 된 것마냥 장난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그러게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내가 생각했던 답은 뻔했다. 아주 속이 후련하네요. 이건 좀 너무했나? 그럼···시원섭섭해요 정도? 시집 가는 동생을 붙잡고 우는 언니가 항상 불만이었던 엄마니까, 더 늦기 전에 얼른 결혼하라고 나와 언니에게 잔소리했던 엄마니까. “마음이 울적해요.” 엄마는 피부 관리사를 흉내낸 내 말투를 따라하며 말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딱 저 일곱 글자의 짧은 한 문장이었다. 마. 음. 이. 울. 적. 해. 요. 나는 엄마의 이 말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그냥 울적해요도 아니라 마음이 울적해요라니. 결혼하는 동생 앞에서 그만 좀 울라며 언니에게 바락 화를 냈던 엄마가 마음이 울적해요라니? 나는 미용 기기를 슬쩍 들어 엄마의 얼굴을 봤다. 엄마는 평소 마사지를 받을 때처럼 두 눈은 꼭 감고 입은 꽉 다물고 있었다. 미세하게 떨면서. “시집 가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이 말을 끝으로 엄마는 본격적으로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말 없이 미용 기기만 엄마의 얼굴에 허정허정 문질렀다. 붉어지려는 눈시울을 이 악물고 잠재우면서. 이 루틴을 하려면 나는 소파에 앉고 엄마는 내 무릎에 누워 천장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엄마의 성에 차려면 이리 저리 각도를 달리 해가며 얼굴을 굴려야 했다. 반대쪽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위해서는 엄마의 얼굴을 내 배 쪽으로 돌리곤 했는데 나는 그 모습이 꼭 아이를 낮잠 재우는 엄마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이렇게 크고 엄마는 이렇게 작아졌네. 시집 가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엄마를 돌보고 살펴봐야 할 수도 있겠네. 내가 엄마고 엄마가 아이가 된 것처럼. 이 얼마나 시건방지고 가소로운 생각이었는지. 나는 언제까지고 엄마 새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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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