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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지
4.5
2개월

작은 매장에 테이블 둘, 바 좌석 여섯 정도로 아담합니다. 이곳은 18시와 20시, 두 타임만 딱 잘라 예약 손님만 받는 편이라 방문 식사는 거의 불가합니다. 저는 6시 타임에 예약해 두 시간 동안 천천히 혼자 즐겼고, 그 사이 방문한 네 팀은 정중히 돌려보내더군요. 접객에서도 미슐랭급 프렌치의 태도가 느껴집니다. 말투나 손놀림, 테이블을 비우는 타이밍 같은 디테일에서요. 재료 대비 가격은 굉장히 저렴합니다. 맥주는 4천 원대 후반이고, 사케 잔술 페어링도 전부 8000원으로 합리적이라 부담이 덜합니다. 클라우드 생맥에 청귤 제스트를 더해 상큼하게 시작했는데, 얇고 가벼운 잔에서 오는 첫 모금의 감도가 좋았습니다. 조명은 은은하게 어둑하지만 사진 찍기엔 괜찮게 세팅되어 있네요. 첫 접시는 물총조개 스프였습니다. 한 숟갈 뜨면 시원한 조개 육수에 훈연향이 얇게 걸리고, 끝에 꽈리고추 오일이 여운을 남깁니다. 여기에 숯불 향을 머금은 야키나스(구운 가지)가 고명을 넘어 향의 축을 세워줍니다. 쌀누룩을 뭉친 시오코지가 스며들어 가지 풍미가 더 또렷해진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문어 사라다 참문어에 붉은 자두로 만든 피자두 소스, 라디치오, 샬롯, 거기에 팥을 더했습니다. 문어는 지나치게 무르지도, 질기지도 않게 정확했고, 자두의 산미와 라디치오의 쌉쌀함을 샬롯의 알싸함이 세우고 팥의 단맛이 모서리를 둥글렸습니다. 계절 과일 소스를 이렇게 단정하게 쓰는 솜씨가 프렌치의 문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어 민어가 허브버터와 함께 나왔습니다. 민어는 확실히 구이에서 매력이 만개하고, 기름의 온도와 굽기의 정도가 맛을 가릅니다. 프렌치 스타일의 팬 시어링이 만들어 낸 겉껍질의 얇은 바삭함과 속살의 촉윤함이 좋았습니다. 민어 부레는 튀김으로 내어 식감을 과감하게 강조했고, 마늘 콩피와 함께 먹으면 바삭함과 눅진함이 겹치며 마지막에 약한 알싸함만 남습니다. 장어 코스는 또 한 번 방점을 찍었습니다. 장어에 단맛 도는 다시마끼(계란말이), 생강 폼 소스, 햇감자, 크루통이 층위를 바꿔가며 입안을 채웁니다. 생강을 폼으로 만들어 장어 위에 얹는 선택은 지방감을 정리하는 동시에 향을 팽창시키는 방식이더군요. 한입은 장어와 계란말이, 생강 폼의 부드러움으로, 다른 한입은 감자와 크루통으로 씹는 즐거움으로 즐겼습니다. 오늘은 야키토리가 컨디션 문제로 빠지고, 대신 가라아게가 나왔습니다. 간은 약간 쎄게 잡혀 있고, 마요네즈 소스도 식초의 결을 달리해 평범함을 피해갑니다. 무난한 한 점이 아니라, 코스 흐름에서 텍스처와 기름감의 균형을 맡는 포지션으로 보였습니다. 사케 한 잔을 곁들이니 튀김의 온도가 한층 밝아졌습니다. 마무리로 청귤 소바가 나왔습니다. 이자카야에서 이런 식사의 말미 면요리는 대개 구색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여기선 달랐습니다. 시즌의 힘을 보여준 제철 청귤의 향, 볶은 메밀 알로 만든 바삭한 아라레, 차갑고 정제된 육수가 메밀면과 만나는 순간 깔끔하게 밀고 나갑니다. 일본식 냉육수 특유의 조미료스러운 잔향이 없고, 깔끔한 감칠맛만 남아 손꼽힐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디저트는 참외 모나카에 땅콩 퓌레와 아카시아 크림이었습니다. 참외를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하면 쉽게 메론 쪽으로 무게가 기울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놀랄 만큼 참외의 결이 정확합니다. 아카시아 꿀의 향을 살짝 얹어 과숙한 단맛 대신 은은한 풀 향이 지나가게 만든 점이 좋았습니다. 오프레에서 인상 깊었던 시즌 디저트의 감각이 이곳에서도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이 집의 컨셉은 한국 재료와 일본식 재료 처리, 그리고 프렌치의 기법이 정교하게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재료의 컨디션에 따라 메뉴를 빼는 고집, 향과 식감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프렌치의 손길, 그리고 술자리를 위한 이자카야의 리듬이 균형을 이룹니다. 가격대는 요리와 주류 모두 퀄리티를 생각할때 아주 저렴한 가격대이고, 계절마다 메뉴 리뉴얼 폭이 클 것 같아 시즌마다 들르고 싶은 집입니다. 점심에 파스타를 1만1천 원에 판매하니 근처 직장인분들께도 가벼운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루우츠

서울 마포구 동교로22길 49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