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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지
4.0
9일

처음엔 여기서 크레페를 파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름이 ‘돌담콩’이라서 뭔가 콩 들어간 디저트나 음료 쪽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철판 위에서 얇게 반죽을 펴고, 손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크레페가 완성되는 그 장면이 보입니다. 와플처럼 두툼한 간식이 아니라, 얇게 말아 쥐고 먹는 스타일이라 산책하다가 한 손에 들기 더 편한 쪽이죠. 위치는 덕수궁 돌담길 교차로 쪽이라 동선이 좋습니다. 걷다가 자연스럽게 멈추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해질녘 분위기가 괜찮아요. 낮에는 바쁘게 지나치던 길도, 해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돌담길 특유의 차분함이 살아나면서 잠깐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큰길 바로 옆인데도 이상하게 소란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게 이 구역의 묘한 장점이더군요. 저는 바나나 크레페로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솔직히 조금 센 편입니다. 다만 받아 들고 보면 양이 꽤 됩니다. 한 장이 생각보다 묵직하고, 속 재료도 아끼지 않아서 한 번에 다 먹으면 은근히 배가 차요. 그래서 연인끼리 오면 한 장 시켜서 자연스럽게 나눠 먹는 게 가장 예쁜 그림일 것 같습니다. 혼자 먹어도 물론 괜찮지만, 반쯤 먹고 남은 건 손이 좀 끈적해져서 들고 다니기 애매해질 수 있거든요. 맛은 단순하게 말하면 “기본기가 좋은 단맛”입니다. 바나나는 원래 안전한 선택이고, 크레페 반죽이 너무 달거나 과하게 질기지 않아서 전체 밸런스가 좋습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바나나의 달큰함이 먼저 오고, 뒤에서 크레페 특유의 구운 향이 받쳐주는 느낌인데, 이게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달달한 간식인데도 끝이 느끼하게 길지 않아서 산책 중간에 먹기 좋은 타입이에요. 저는 이런 집이 좋은 게, 과하게 ‘디저트 카페 느낌’으로 꾸며 놓기보다 길 위에서 딱 필요한 만큼만 잘 해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있습니다. 돌담길에서 해질녘에 잠깐 멈춰 서서, 따뜻한 크레페를 손에 쥐고 천천히 먹는 그 몇 분이 꽤 괜찮더군요. 일부러 찾아가도 손해는 없고, 근처를 지나가는 날이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집으로 남았습니다.

카페 돌담콩

서울 중구 덕수궁길 9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