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인바라면 언제나 환영이야! 한남동 골목에 위치한 내추럴 와인바. 라신반은 나침반(羅針盤)을 일본어로 읽은 것으로, 이름에 맞게 일본 퓨전 요리를 선보인다. 와인에 주력하는 곳이지만, 사케 또한 취급하고 있다. 매장은 대여섯 팀 정도 수용 가능한데,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예약하고 방문하는 게 좋아 보인다. -------- 음식 및 주류의 가격이 상당히 합리적이다. 한남동이라는 위치, 그리고 화려한 플레이팅을 토대로 예상했던 것에 비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 사장님께 와인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몇 가지 선택지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제시해 주셨다. 우리는 그 중에서 구엣타펜으로 주문. 웰컴 디쉬로는 감자 샐러드가 나온다. ♤ 사시미누들 (17,000₩) 반드시 주문해야 할 메뉴. 메밀면 위에 사시미와 연어알, 날치알 등이 올라가 있고, 먹을 때는 사시미로 면을 감싸서 먹으면 된다. 육수에서는 은은한 트러플 향이 나는데, 이게 의외로 소바 및 사시미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소바 육수 또한 별로 짜지 않아서 과감하게 찍어 먹어도 무방하다. ♤ 3란 카펠리니 파스타 (17,000₩) 수란, 명란, 어란의 세 종류 알이 올라가 있는 파스타. 밑에 있는 들기름과 잘 섞어서 먹으면 된다. 파스타보다는 들기름 막국수와 비슷한 음식으로, 얇은 엔젤헤어(카펠리니) 면을 써서 소면과 흡사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맛도 있었는데, 다만 들기름의 개성이 강해 알의 맛이 많이 느껴지진 않았다. 명란의 경우 섞지 않고 조금씩 곁들여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타이스타일 방어사시미 (20,000₩) 고수와 마늘 플레이크, 코코넛 밀크 등이 올라간 방어 사시미. 마늘 플레이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아몬드를 먹는 것 같은 고소함이 정말 좋았다. 회와 고수의 조합은 생소했는데, 생각보다 궁합이 참 잘 맞았다. 개성 강한 식재료들이 많이 올라가서 방어 자체의 맛이 크게 돋보이진 않았다. 다른 흰살 생선으로 만들어도 맛있을 것 같다. ♤ 노노리 노라이스 (15,000₩) No Nori(김), No Rice(쌀). 후토마끼인데 거기서 김이랑 밥을 뺀. 김 대신 무로 말아서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연어와 아보카도의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포인트인 메뉴. ♤ 크리스피 투뿔한우 트러플미소 4pc (24,000₩) 모짜렐라 치즈를 다진 한우로 감싸서 튀겨낸 메뉴. 고오오급 치즈볼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러플을 쌀 위에서 보관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 메뉴 역시 쌀 위에 올려져 나온다. 트러플미소 소스에 듬뿍 찍어 먹으면 되는데, 맛없을 수가 없는 근본 조합이다. 겉의 굽기도 딱 알맞고, 속의 모짜렐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은 듯 쭉쭉 늘어난다. ♤ 사바보우즈시 (15,000₩) 시메사바의 맛은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으나,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놀랐다. 이 가격에 9피스가 나올 줄은 예상을 못 했다. 덕분에 아주 배부르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 Guet-apens 2019 (85,000₩) 실바네르, 머스켓 오토넬 등의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정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난해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와인 같다. 입 안에서 과실향이 팡 터지는 게 느껴지고, 과하게 시큼하거나 달지도 않아서 좋았다. -------- 2020년 초 들어 내추럴 와인바가 트렌드로 떠올랐지만, 나에게는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와인의 진입장벽이 높고, 와인바에서 나오는 요리들도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부실한 곳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싸기만 한 와인과 요리를 원효대사 해골물 마냥 좋다고 먹는 일을 피하기 위해 그 동안 와인바를 기피해 왔었다. 허나 라신반은 다르다고 느꼈다. 단순히 눈으로만 즐거운 요리가 아니라, 맛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가격 측면에서도 거품이 끼지 않은 훌륭한 요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손님들이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음식과 와인에 걸쳐 정성스럽게 신경을 써 주시는 사장님 덕분에 더욱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잘 먹고 마시고 갑니다! 추천도: ★★★★☆
라신반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