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부서진 모래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듯 뷔어버린 마음도 결국 당신에게 돌아가고 노을이 져서야 알았다, 모든 헤맴의 끝은 당신이었음을. 제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마지막 저녁만큼은 조금 괜찮은 다이닝을 먹고 싶어서 파뷔노 파스타바를 찾았다. 선택한 건 디너 8코스 1인 68,000원. 여기에 음식에 맞춰 세 잔을 내주는 와인 페어링 40,000원도 함께 주문했다. 파뷔노의 김병훈 셰프는 호주 시드니의 대표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Quay 등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셰프님은 굉장히 친절했고 음식이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설명도 세심하게 해주셨다. 우리는 저녁 7시 30분 타임에 방문했는데 이날 이 시간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여유롭게 설명도 듣고 세심하게 챙김을 받으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파스타바라는 이름답게 코스의 중심에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파스타가 있었고, 제주 식재료를 곳곳에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 Amuse — 스트라치아텔라 치즈, 한라산 생귤 절임 방울토마토, 프리세 샐러드, 영귤 비네그레트 첫 시작은 가볍게 버무린 샐러드. 한입 먹자마자 굉장히 산뜻하고 상큼하다. 스트라치아텔라 치즈의 부드러움에 방울토마토와 영귤 비네그레트의 산미가 더해져 무겁지 않으면서 입맛을 확 돋워준다. 본격적으로 파스타를 먹기 전 입을 깨워주기에 딱 좋았던 시작. 🍤 Antipasto — 제주 흰다리새우 아란치니, 토마토 소스, 제주 바질 마요 제주 흰다리새우를 넣은 아란치니 아래에는 3시간 동안 끓였다는 토마토 소스가 깔리고 위에는 제주 바질 마요가 올라간다. 아란치니를 씹으면 새우 특유의 탱글한 식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특히 토마토 소스가 오래 끓였다고 해서 무겁거나 텁텁한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프레시하게 느껴진 점이 좋았다. 제주 바질 마요에서는 바질 향이 꽤 강하게 올라왔고, 세 가지를 한꺼번에 먹으니 각각의 맛이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 Primo 1 — 제주 단호박 토르텔리니, 세이지 브라운 버터 소스, 피스타치오 첫 번째 파스타부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토르텔리니 안이 정말 단호박으로 꽉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입 베어 물면 단호박 특유의 달큰하고 진한 맛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세이지 브라운 버터 소스의 풍미가 더해지는데 소스 맛도 상당히 좋았다. 피스타치오가 중간중간 식감까지 더해줘 단조롭지 않다. 단호박이라는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날 기억에 남는 파스타 중 하나. 🦑 Primo 2 — 오징어 먹물 링귀니, 제주 제철 생선, 앤초비, 시오콘부, 제주 레몬 두 번째는 검은색 오징어 먹물 링귀니. 일단 검은 면이 주는 색감부터 시선을 끌었고 링귀니 면의 식감도 상당히 좋았다. 함께 나온 제주 제철 생선은 셰프님이 잘게 부숴 면과 함께 섞어 먹는 것을 추천해주셨다. 그대로 먹어보니 생선의 풍미와 앤초비에서 오는 감칠맛이 면과 섞이면서 굉장히 맛있었다. 제주 레몬이 더해져 해산물에서 오는 풍미가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게 잡아주는 것도 좋았다. 특히 이 메뉴는 함께 나온 화이트 와인과 먹었을 때 조합이 상당히 좋았던 기억이 난다. 🍝 Primo 3 — 파파르델레, 판체타, 제주 버섯 라구 비앙코, 망가닥 버섯 세 번째는 넓적한 파파르델레. 앞의 토르텔리니와 오징어 먹물 링귀니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상대적으로는 살짝 약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넓은 파파르델레 면을 씹는 식감 자체는 상당히 괜찮았다. 판체타와 제주 버섯을 사용한 라구 비앙코가 어우러지는 구성으로, 앞의 두 접시가 캐릭터가 확실했다면 이쪽은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맛에 가까웠다. 🍏 Cleanser — 풋사과 그라니따, 라즈베리 퓌레 세 가지 파스타를 먹고 메인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풋사과 그라니따와 라즈베리 퓌레가 나왔다. 나는 원래 새콤한 걸 좋아해서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정말 새콤하다. 풋사과의 산미에 라즈베리의 새콤함까지 더해져 앞서 먹었던 버터와 파스타의 맛을 깔끔하게 씻어내준다. 입안이 확 리셋되는 느낌이라 클렌저 역할을 제대로 했다. 🥩 Secondo — 채끝 등심 스테이크, 와사비 김녕양파 퓌레, 제주 꽈리고추 장아찌, 레드와인 주 메인은 채끝 등심 스테이크. 조리하는 모습을 보니 중간중간 레스팅을 충분히 시키는 듯했는데, 실제로 먹었을 때 속은 촉촉하고 겉은 살짝 바삭한 듯한 식감이 느껴져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여기서 의외로 기억에 남았던 게 제주 꽈리고추 장아찌. 내기 직전에 토치로 꽈리고추를 강하게 그을려주시는데, 토치질을 하는 순간부터 향이 확 올라온다. 먹어보면 살짝 매콤하면서 강한 불향이 느껴져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정말 잘 잡아준다. 함께 나온 와사비 김녕양파 퓌레는 생각했던 것만큼 양파 향이 강하게 튀지는 않았고, 전체적인 맛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느낌이었다. 고기도 좋았지만 꽈리고추 장아찌가 확실히 킥이었던 메인. 🍷 Wine Pairing — 3잔 40,000원 와인 페어링은 코스에 맞춰 총 세 잔이 나왔다. 첫 번째는 Cantina La-Vis Riesling Trentino DOC. 산뜻하게 시작하기 좋았던 리슬링. 두 번째는 Anselmi San Vincenzo 2025. 특히 제주 제철 생선이 들어간 오징어 먹물 링귀니와 함께 먹었을 때 굉장히 잘 어울렸다. 생선과 앤초비의 감칠맛에 화이트 와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라 이날 화이트 와인 중에서는 이 조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은 Nicolis Valpolicella Classico 2020. 채끝 등심 스테이크와 함께 마셨는데 개인적으로 이날 세 잔 중 음식과의 궁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스테이크의 육향과 레드 와인이 상당히 잘 어울렸고, 여기에 토치로 그을린 꽈리고추 장아찌의 불향과 매콤함까지 더해지니 메인을 먹는 재미가 확실히 살아났다. 와인 자체를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마셨다기보다는 음식과 함께 먹었을 때의 조합이 좋았다는 인상이 강했던 페어링이었다. ☕ Dolce — 수제 티라미수, 카카오 크럼블 마지막은 수제 티라미수와 카카오 크럼블. 동그랗게 만들어낸 티라미수부터 모양이 예뻤고 맛도 좋았다. 부드러운 티라미수에 카카오 크럼블이 더해지면서 식감이 살아나고 카카오의 쌉싸름한 맛까지 더해지니 상당히 잘 어울렸다. 코스 마지막까지 만족스럽게 마무리해준 디저트. 전체적으로 파스타를 중심으로 제주 식재료를 풀어낸 구성이 재미있었던 코스였다. 특히 단호박으로 속을 꽉 채운 토르텔리니와 제주 제철 생선을 부숴 함께 먹었던 오징어 먹물 링귀니가 기억에 남았고, 메인에서는 토치로 그을린 제주 꽈리고추 장아찌가 의외의 킥이었다. 무엇보다 68,000원이라는 가격에 아뮤즈부터 안티파스토, 서로 다른 세 종류의 파스타, 클렌저, 채끝 등심 스테이크와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구성이 꽤 알찼다. 김병훈 셰프님도 굉장히 친절했고, 이날 7시 30분 타임에는 우리밖에 없어서 조금 더 여유롭게 설명을 들으며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여기에 세 잔의 와인 페어링까지 곁들이니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조금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목적에 제대로 들어맞았던 저녁, 파뷔노였다.
파뷔노 파스타바
제주 제주시 신성로12길 2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