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향육슬이 생각나서 근처에 좋은 곳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중국에 있던 시적에 대체로 한국사람들끼리 베이징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주문하는 메뉴가 뻔했다. 경장육슬 어향육슬 마파두부 철판소고기 궁보기정 고기류를 제외하면 공심채 토마토계란볶음 등등 중국에 막 도착한 초기에는 그랬다. 나중에는 가끔씩 어향육슬을 주문해 먹었지만 초창기처럼 찾지는 못했다. 다른 것들 중에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생겼고 아무리 좋아하던 음식이라도 매일 먹다보면 물리게 마련이다. 그래도 가끔씩 아무것도 모르겠는 중국어로 된 메뉴판을 보다가 어향육슬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여튼 뭐 그러던 음식이다. 중국에서는 솔직히 어느지역 어느식당에 가나 다 판매하고 있는 보편적인 음식이다. 그러던 중 한국에 귀국했다. 몇년이 지나니까 스멀스멀 하고 어향육슬이 생각나는 거였다. 그래서 몇군데 찾아봤었는데 맛이 좀 달랐다. 뭔가 먹으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영혼없는 어향육슬만 여러번 먹었다. 몇년 전에는 유명 셰프가 한다는 서촌의 모 중식집에서는 어향육슬이란 이름을 내걸고 형편없는 음식을 내 왔기에 황당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작년에 집 근처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준이네당산양꼬치 집에서 무심코 주문했던 어향육슬이 비슷한 맛이 나서 반가웠다. 최근에 갑자기 어향육슬 맛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검색을 하다가 찾아와봤다. 산하신승부. 대림에 위치한 곳이다. 솔직히 대림역 중국식당들의 퀄리티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예전 봉선마라탕에서 먹었던 경장육슬이 너무 맛이 없었던 기억도 있고 날씬한원숭이마라탕집에서 회과육을 먹어보고 참 한숨이 나왔던 적이 있다. 왕기마라향과는 그래도 맛있는 식당 축에 드는 곳인데 중국서 웬만한 식당들은 다 기본은 하는 마파두부가 그냥 그래서 아쉬웠다. 너무 자극적인 맛이 빠져서 마치 물에 씻은 배추김치를 먹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집 근처 일품각의 경장육슬 하나가 대림에 중국식당들을 모두 올킬해버릴 정도. 물론 마음에 든 곳도 몇군데 있긴 했기에 반신반의하면서 가봤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중식집들이 그렇듯... 뭐든 한다. 양꼬치 마라샹궈 마라탕 훠궈 생각해보면 중국에 있는 한식집들도 그랬다. 한국료리 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르 불문하고 모든 메뉴를 다했다. 물론 맛은 한국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그래도 참고한 블로거 말을 믿고 주문했다. 솔직히 매력적인 메뉴들은 많이 보였다. 슈이쥬로우피엔 향라육슬 - 우리나라 중식집의 고추잡채와 그나마 가장 유사한 음식. 궈바로우 쏸라미엔 샨시량피 우육면 청경채표고볶음 마파두부 경장육슬 쯔란신관 훈둔 등등. 샤오롱바오랑 샤오롱빠오구이도 있었다. 구이가 넘나 탐났다. 맛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어보고 싶은 메뉴들이 너무 많다. 어향육슬 15000 샨시량피 7000 어향육슬은 일단 양부터 푸짐하다. 얇은 접시에 나와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많은 건 확실하다. 소스의 생김새부터 일단 내가 알던 어향육슬이 맞다. 걸쭉하고 옅은 붉은 빛깔을 띄는 소스. 목이버섯 피망 등. 어향은 물고기 요리에 맛을 내는 소스이다. 육슬은 돼지고기를 채썬 것이다. 육은 고기를 뜻하는 한자 “肉”을 쓰는데 그냥 고기육(肉)만 쓴다면 그것은 돼지고기이다. 사는 실을 뜻하는 絲si(1성) “로쓰”라고 읽는다. “쓰si”를 웬일인지 화교들의 의해 슬이라고 발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향육슬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어향육사가 맞다. 어향소스는 칠리처럼 매콤하고 새콤하며 달달하다. 매콤하면서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딱 한국사람들이 좋아할 정도로만 맵고 달달함도 과하지 않다. 새콤함도 매력적이다. 단지 돼지고기는 살짝 아쉬웠다. 물론 예전에 돼지고기가 더 좋다 이런건 아니고. 살짝 육질이 아주 훌륭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짧고 길게 썰어져 있기에 먹는데에 불편함은 전혀 없고 또한 가격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다른 부분은 다 마음에 들었다. 아쉬웠던 것은 샨시량피 샨시는 삼국지나 초한지를 보면 자주 나오는 중국의 고도 장안 지금은 시안으로 불린다. 시안은 지금 섬서성에 속해있다. 섬서에는 미피라는 것이 유명했다. 진시황 시적에 한 마을에 쌀을 진상해야하는데 품질이 너무 떨어졌기에 쌀가루를 쪄서 미피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얇은 전병 같은 것이다. 그것이 넓적국수로 발전해왔다. 지금은 미엔찐이라는 글루텐덩어리(술빵 같이 생겼다.)과 식초 땅콩소스 고추가루 고수 등이 들어간 비빔국수 형태로 많이 먹는데 이것이 맛이 기가 막힌다. 아! 물론 잘하는 곳에서 먹을 때 말이다. 이곳은 샨시량피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땅콩소스는 빠진 것 같고 그래서인지 고소한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미엔피는 쫄깃쫄깃했고 미엔진도 그 나름대로 특이한 식감을 뽐냈다. 소스만 잘 만들었다면 정말 좋을텐데... 남길것 같아서 나는 고수를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도 고수를 때려넣으니까 먹을만해 졌다. 어향육슬은 참 맛있었는데 샨시량피 참 아쉽다. 예전 성남 수진동 중국인거리에 정종마라탕집에서 하던 샨시량피가 예술이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문을 닫은 듯 하다. 지금도 가끔 그 맛을 생각하며 침이 고인다.
산하신승부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126 풍림빌딩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