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 안암. 국밥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한 것이 돋보입니다. 첫 숟갈에는 이게 어떤 식으로 새롭다는 건지 긴가민가 합니다. 그런데 떠먹으면 떠먹을수록 청양고추 기름의 향미가 꽤나 알쏭달쏭합니다.* 고추의 상큼한 향과 매콤한 맛이 함께 올라오는 게 여러모로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이 국밥의 진면목은 등갈비를 뜯었을 때 나옵니다. '안암 등갈비 국밥'이라는 메뉴 이름만큼이나 등갈비를 뜯어먹어 보아야 이 메뉴의 구심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명으로 나오는 목살은 사실 부가적인 존재일 뿐 주장이 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갈빗대가 제대로 삶아지지 않아 잘 뜯어지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제 친구는 운 좋게도 모두 푹 삶아져 있었지만 저는 하나가 꽝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냉제육을 먹어봅니다. 고수 샐러드를 냉제육에 싸서, 라임 즙을 뿌려 먹으면 됩니다. 한국인에게 '샴푸 향'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고수 향이 라임과 적절히 어울려 기분 좋은 '오렌지 샴푸 향'이 되어 부담스럽지 않게 됩니다. 저는 고수에 대한 부담감이 원래도 큰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고수 향을 즐길 만한 수준으로 양념되어 나오는 만큼 많은 분들께 조심스레 권해 봅니다. 이 고수 샐러드는 고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샬롯과 함께 나옵니다. 그런데, 샬롯의 향이 방해되리만치 강합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국밥은 등갈비 육수의 잔잔함에 가끔가다 나물 기름이 파문을 일으키는 맛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주 조금 얹어져 있는 쪽파마저 방해가 된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국밥에 곁들여 먹기에 샬롯의 향은 너무나도 강합니다. 냉제육 자체로만 보면 훌륭합니다. 그러나 곁들임의 목적이라면 샬롯의 주장은 부담스러웠습니다. 결국 샐러드에서 고수는 전부 먹었습니다만 샬롯은 꽤나 남았습니다. 고기 자체의 육질에 대해서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역시 고기라 그런 걸까요? 그래도 한입 가득 집어넣으면 행복한 맛입니다. 적당하게 간이 되어 있고 미박된 상태인 것 또한 마음에 듭니다. 국밥을 반쯤 먹고 초피를 넣어 먹어보길 권하고 있습니다. 초피를 넣으면 맛이 확실히 달라지는데, 초피를 중심으로 맛이 재편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식사의 템포가 확실히 빨라지는 건 어쩔 수 없겠습니다. 그래도 자칫 물릴 수 있는 이 슴슴함에 초피를 더하길 권하고 있는 것이 매우 사려깊은 권고처럼 느껴집니다. 토렴되어 있는 밥의 품질 또한 매우 훌륭합니다. 고슬고슬하지만 않고 적당한 찰기가 있어 이에 잘 달라붙고, 단맛이 훌륭합니다. 함께 섞어 지은 보리 또한 씹는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곁들이라고 준비한 배추김치는, 익은 정도는 훌륭했습니다만 국밥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나물 류를 비치해 두는 것이 국밥과 더욱 잘 어울리지 않았을지, 혹은 적어도 백김치 류여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심결에 먹었다가 감동이 초기화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웨이팅은 정말 깁니다. 점심 웨이팅은 원격 줄서기가 열릴 때부터 하시는 걸 추천드리며 저녁도 최소 4시 40분 정도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 긴긴 웨이팅을 감수할 수준의 감동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공간 자체가 좁고 수요가 많다 보니 착석 이후 내어오기까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른 편인데, 주문 이후 자리에 앉아서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하고 상상해 보는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쉽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운영 상 필요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고, 제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니 접어두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밥에 대해 정말 새로운 시도를 한 집임에는 동의하고, 재방문 의사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늦가을 한번씩들 방문해 보시는 것 추천드립니다. * 혹자는 케일이라고도 하고, 가게 소개에서는 그렇게 나와 있던데... 케일만으로 그런 맛이 날 수 있나요? 식견이 짧아 많은 분들께 여쭈어 봅니다.
안암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10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