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또다시 홍콩을 찾아올 명분인 국수> 귀국 전 마지막 한 끼도 대충 때울 수 없어 페리를 타고 센트럴로 향했다. 홍콩 여행 셋째 날에 토마토 라면을 맛있게 먹었던 勝香園을 지나서 양조위가 단골이라는 국숫집에 도착했다. 오픈 30분 전인데도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선 걸 보고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픈 시간이 되자 좁은 가게 안으로 사람들이 쏙쏙 들어가더니 나도 어느새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홍콩은 합석이 낯설지 않은 문화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한 번에 들여보내 가능한 일이었다. 원형 테이블에 여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둘러앉았으며 곧바로 13번 국수를 주문했다. 번호별로 국물과 내용물 그리고 면이 다 달라서 일일이 소개하진 않겠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13번과 14번이다. 둘 다 카레 베이스 국수인데 넣는 면이 조금 다르다. 13번은 그냥 쌀면이며 14번은 튀긴 쌀면이다. 이걸 제외하곤 소고기 양지, 도가니 등 내용물은 똑같아 푸짐한 카레 국수를 먹을 생각이라면 길게 고민 말고 이 둘 중에서 고르면 된다. 소고기 양지는 두께가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질 만큼 두툼한데 카레 국물을 잔뜩 머금어 고깃결을 따라 부드럽게 찢어진다. 카레 국물의 매콤함까지 깊게 배어있다. 끝부분에 지방이 살짝 붙어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왔고 느끼함은 국물이 잘 잡아줘 전혀 못 느꼈다. 두께로 인해 씹는 맛도 어느 정도 나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메뉴판에 쌀국수라 쓰여있으니 면은 쌀면이 맞을 텐데 쌀국수에 들어가는 쌀면과는 또 다르다. 면발이 조금이라도 쫄깃하거나 탱글하지 않았고 툭 끊기는 식감이어서 두부면 같았다. 다행히 국물이 굉장히 걸쭉해 면이랑 따로 노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국물은 쉽게 표현하자면 카레 풍미와 향신료를 갈비탕 육수와 합쳐놓은 듯한 맛으로 시원하면서도 자극적이다. 도가니는 양지 못지않게 흡족스러운 크기에 어찌나 국물에 오래 끓여지며 졸여졌는지 색이 다 붉게 물들어있었다. 말캉한 식감이 좋았고 카레 맛이 배어 뭘 따로 안 찍어 먹어도 됐다. 가뜩이나 홍콩의 매력에 푹 빠진 나머지 귀국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이 카레 국수를 먹고 나니 진지하게 홍콩에 눌러앉고 싶어졌다. 언젠가 또다시 홍콩을 찾아올 명분이 생겼다.
Kau Kee Restaurant
17 Gough St, Central, Hong 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