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울 수록 맛있는 라리의 밀크레이프 케익, 서울빵지순례(6) Good: 무엇을 시키더라도 보장된 맛, 시간이 흘러 얼추 맞춰진 가성비, 음료 맛도 수준급, 추억을 자극하는 인테리어 Bad : 음료 가격이 있는 편 추천: 크레이프, 치즈딸기케이크, 펌킨 프랑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디저트 설문조사에서 크림 브륄레나 마카롱과 함께 항상 수위를 다투는 녀석이 있다. 바로 크레페(Crêpe)다. 크레페는 퀸아망과 마찬가지로 브르타뉴 지방에서 유래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는 메밀이 전래되자 밀가루가 부족했던 브르타뉴 지방사람들이 매우 기뻐하며 물과 소금을 넣고 얇게 부치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그거 메밀전병인데…)얼마 전인 2월 2일이 봉헌축일(Chandeleur)으로 프랑스에서는 이날 집에서 크레이프를 부쳐 먹던 풍습이 있어 '크레페 먹는 날(Jour des Crêpe)’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크레페와 비슷한 음식을 찾자면 아프리카부터 한국까지 얇게 부쳐내는 모든 전병 요리가 튀어나온다. 인류가 밀과 메밀을 키웠을 때부터 이렇게 해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형태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원조는 역시 다르다. 밥먹고 숭늉 먹는 우리민족처럼... 프랑스에서는 식사로 메밀가루를 넣어 담백하고 고소하게 부친 '크레페 살레(crêpes salées)'를 먹고 후식으로 달달하게 부친 크레페 쉬제트(Crêpe suzette)나 아예 탠저린이나 레몬껍질, 캐러멜을 곁들인 새콤달콤한 '크레페 수크레(crêpes sucrées)'를 디저트로 먹기도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케이크 전문점이나 편의점, 이젠 심지어 온라인 배송으로도 쉽게 접하는 밀크레이프 케이크는 사실 프랑스가 원조가 아니다. [??? : 밀크레이프 케익이란게 사실 일본에서 온거거든요?] 우리가 밀크레이프라 부르는 케이크형태의 크레페는 도쿄 미나토구 니시아자부(西麻布)의 두 가게로부터 시작되었다. 아구찜 골목을 가도 원조 논란이 있듯이 비슷한 시기에 밀크레이프를 팔기 시작한 두 가게는 40년 이 지난 지금까지 원조 논란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은 상태다. ‘루에르 드 두리에르( ルエル・ドゥ・ドゥリエール)’ vs ‘카페 페이퍼문(カフェペーパームーン)’ 밀(Mille)이란 단어는 천(千)을 뜻하는데 밀푀유(Mille-feuille)처럼 여러겹으로 이루어진 요리에 주로 들어가는 접두사다. 얇은 크레페 사이에 크림을 바르면서 10~30장 정도 쌓아 올리는데 한장 한장 수제로 구워야 하므로 품이 많이 드는 케이크 중 하나다. 스스로 원류라 주장하는 곳(重ね続けて、35年。創業1978年のドゥリエールはミルクレープ発祥のお店です)은 1978년 문을 연 ‘루에르 드 두리에르’다. 밀크레이프의 초기 인기는 저조했지만 맛을 보고 가능성을 높이 산 커피 프렌차이즈 업체에서 계약을 권유하면서 전국에 밀크레이프는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손을 내민 업체는 일본에만 11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 커피 프렌차이즈 No.2 ‘도토루’였다. 지금도 도토루하면 밀크레이프다. 그러나 정작 밀크레이프의 성지였던 루에르 드 두리에르의 본점은 폐업했다. 이후 소라마치에 ‘두리에르’란 이름으로 재 개장했지만 이마저도 현재 폐점한 상태다. 타베로그를 보니 원조라는 기대치에 비해 맛은 아쉬웠던 모양. 원조 논란으로 두리에르와 다툼이 있었던 ‘페이퍼 문’의 와다 에미 (和田エミィ)씨는 2013년 도쿄의 가게를 접었다. 그리고 ‘LADY-M’이란 이름으로 뉴욕과 하와이 등지에서 밀크레이프 케익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가 특집을 구성하기도 하고 하버드에서 그녀의 경영법을 교재에 실을 정도. 크레이프 하나로 연 성장 80%에 매출 100억 달성이라니 놀랍다. 정작 일본에서는 원조라 할만한 매장이 모두 사라져 LADY-M의 역 수입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란다. 한국에 진출한 LADY-M은 2016년 라이센스 관련 분쟁이 있더니 엠부띠끄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밀크레이프에 대한 쓸데없는 TMI가 길었지만 <카페 라리>는 나의 인생 첫 밀크레이프 경험지다. 물론 맛은 압도적으로 최고.압구정 매장이 사라져 슬퍼하다가 얼마전 직장 근처에 서초점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생일 핑계로 한판을 구매했다. 이럴 때는 좋아하는 가게가 프렌차이즈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무리 맛있는 밀크레이프면 뭐하나. 원조가 무엇이 중요한가. 지금 내가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더 중요혀... 추억속에 라리 밀크레이프는 담백하면서도 크림의 풍미가 좋고 한겹한겹 앞니에서 끊어져 나가는 크레페의 식감이 뛰어났다. 그러나 이번에 산 녀석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크림은 살짝 느끼했고 식감도 흐물흐물ㅠㅇㅠ. 이게 바로 추억보정인가 싶어 한조각만 먹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본 밀크레이프는 추억속 맛과 같은 맛이었다. 크림이 단단하게 변하면서 담백해졌고 식감도 기억처럼 좋았다. 찾아보니 밀크레이프의 원래 레시피에도 ‘반드시(!)’ 30분 이상 식힌 후에 서빙하도록 되어 있었다. 혹시 크레이프 케익을 집에서 먹을 일이 있으면 꼭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드시길 바란다.
카페라리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2길 37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