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행 왕대구뽈구이와 지옥에서 온 홍어라면. — 내게는 독특한 모임이 하나 있다. 대학 교수와 대기업, 스타트업, 사모펀드라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이라는 공동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식재료, 인문학, 비지니스 등 전공 분야가 서로 다르다보니 별 거 아닌 걸로도 풍성하게 오디오를 채운다. 음식 앞에서 내가 가장 조용해지는 자리이기도 하고, 사십대에 외모 칭찬을 가장 많이 듣는 자리이기도 하다. (후자가 핵심) 이번 장소는 낙원동 후미진 뒷골목에 숨어있는 ‘홍어랑민어랑’. 경상도에서 배를 띄우던 선장님이 충청도 아내분과 함께 서울에서 운영하는 전라도 음식점이다. (매우 복잡) 삼합은 적절하게 삭힌 홍어와 폭삭 익은 웰던 신김치가 무던한 고기를 감싼다. 녹진한 민어회는 서울의 웬만한 이름난 식당들보다 낫다. 이 곳의 일미는 왕대구뽈구이. 말 그대로 왕! 만한 대구 대가리를 바싹 구워서 낸다. 생선 대가리살 특유의 진득하면서 쫄깃한 식감. 고소한 탄 맛과 담백한 대구살 맛의 콜라보. 그리고 대망의 홍어라면. 홍어애탕이 아니다. 홍어 뼈와 살을 넣고 끓인 라면. 끓이면 암모니아향이 증폭되는 홍어의 특징을 살리면서 라면의 대중성을 이용해 맛을 헷징한 재밌는 메뉴다. 라면을 끓이기 시작하자 공간을 완전히 덮어 버리는 찡한 냄새. 완전히 뭉그러진 홍어 뼈와 살이 착 달라붙은 라면을 한 젓가락을 먹으니 헛기침과 헛웃음이 난다. 찡한 냄새와 고소하고 맵칼한 맛에 자꾸만 젓가락이 간다. 이내 텅 비워진 냄비. 이 와중에 부대찌개를 모티브로 한 삼양라면보다는 된장 맛이 가미된 안성탕면이 더 어울릴 거라는 못말리는 아재들. instagram: colin_beak
홍어랑 민어랑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28길 7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