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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B
추천해요
2년

아주 사적인 칵테일과 황제해장라면. — 누구나 퇴근길 바에 앉아 우아하게 한잔하는 자신을 그린 적이 있을 것이다. 심야식당에서 음식과 술, 그리고 대화로 위로받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경리단길에 위치한 <반창고>는 그 두 가지 목마름을 동시에 해소시켜주는 곳이다. 커버차지니, 오토시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앞세워 내 주머니를 털어간 바, 그리고 한 잔에 2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값비싼 칵테일에 받은 상처. 이곳은 그 위에 반창고를 붙인다. 인스타 계정에 들어가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을텐데, 이곳의 오너분은 똘끼로 똘똘 뭉쳐있다. 바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가 박힌 굿즈도 만들었다. 술잔 아래 불을 붙인 뒤 “칵테일 상디 버전”이라며 좋아한다. 이게 무슨. 손님의 취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칵테일을 만들어준다. 다음날 일정으로 아내가 먼저 떠나고, 혼자 커플들 사이에 껴있는 내게 위태로운 잔에 담긴 붉은 칵테일을 주면서 조용히 그 옆에 가로등 모양 조명을 세운다. 둘째를 낳고 독박 육아 중인 엄마에겐 불타는 분노를 형상화한 칵테일을, 20년 전 바에서 일한 경험을 얘기하며 라떼는마리아를 시전하는 아저씨에겐 추억의 ‘준벅’을 만들어 준다. 가장 좋았던 건 <스모키앤미러스>. 피트향이 강한 라프로익을 라임과 꿀로 감싸 부드러운 오크향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연기 속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설명이 이어지는데 내 머릿속엔 이 분 정말 보통은 아니란 생각뿐이었다. 맛있는 술에 이어 이젠 음식으로 위로받을 차례. 콩나물과 특제 양념을 넣고 시원하지만 묵직하게 끓여낸 라면. 돼지고기 몇점과 계란, 쑥갓까지 곁들이니 이 밤, 황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클래식을 원한다면 굳이 이곳일 필요는 없다. 아주 사적인 것으로 위로받고 싶다면 추천. instagram: colin_beak

반창고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20-1 지하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