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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B
추천해요
2년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달콤살벌한 다이닝. — 신당동의 뒷골목에 수상쩍은 장소가 있다. 통유리 너머 보이는 희한한 광경. 근사한 조명이 내리쬐는 바테이블 한켠에 4분도체로 분할된 돼지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재즈가 흐르는 실내. 입매가 아름다운 사내가 반갑게 맞이한다. 언뜻 수줍어 보이지만,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다. 술로 목을 축이고 있으니 속속 등장하는 오늘의 부쳐꿈나무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사내가 칼을 쥐어든다. 약 한시간 정도 진행되는 발골과 정형. 꿈나무들은 능숙하게 돼지를 해체해나가는 부쳐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며,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 보따리를 펼쳐놓는다. 단단한 껍질을 두들겨도 보고, 등갈비뼈를 잡아 뽑아도 보면서 돼지와 더욱 돈독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스무가지의 부위가 준비되자 시작되는 식사. 돈사골 육수에 담근 아롱사태구이와 돼지육회로 시작해 돼지고기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곁들이는 찬 몇가지와 마무리 햇반 정도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고기 또 고기. 로스율이 높은 방식으로 서브한다지만, 인당 800그램 정도의 고기를 배정한다고 하니 나름 육식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도 결코 녹록지 않은 여정이다. 코스가 끝날 무렵엔 무한도전 50회 특집에서 잔치국수 50그릇을 먹고 뻗어버린 준하형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기의 질도 훌륭하지만, 더욱 압도적인 건 사내의 굽는 스킬이다. 3-4시간 동안 진행되는 식사 시간 내내 그야말로 혼을 담아 고기를 굽는다. 손으로 고기의 상태와 온도를 느끼며 굽고, 토치를 사용해 뽑아낸 기름으로 고기를 겹겹이 코팅한다. 다 익힌 고기는 가장 맛있는 부위로만 썰어서 자투리 고기의 육즙을 그 위에 짜낸 뒤 손님 접시 위에 올린다. 코스의 마지막 즈음엔 컵에 각얼음을 넣고 신중하게 콜라, 사이다를 따라 청량한 칵테일처럼 변신시키는 놀라운 마법도 보여준다. 마치 소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듯, 코스를 마친 사내가 무대인사를 하자 손님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사실 이 사내, 호텔을 포함한 여러 매장에 흑돼지를 납품하는 정육도매회사의 후계자란다. 국내의 획일화된 돼지고기 식문화를 바꿔보고 싶어 요식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공간이자, 개인들이 자신의 돼지고기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소셜키친을 마련한 것이라고. 부쳐의 시선으로 구성된 참신한 코스와 이끌어가는 사내의 뜨거운 열정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멋진 경험. instagram: colin_beak

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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