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20년을 책임져온 구씨의 술집. — 식도락의 매력 중 하나는 음식을 매개로 한 사람들과의 연결이다. 재작년부터였나, 20대 유저가 주인 맛집앱에 한 노신사분이 글을 쓰기 시작하셨는데, 트렌디한 식당까지 섭렵하시고 기품있는 표현으로 감상을 풀어내시는 걸 보면서 늘 감탄해 마지 않았다. 어느날 그 분이 애정하는 식당이 곧 사라진다는 아쉬움 그득한 글을 올리셨고, 나도 모르게 ‘그 전에 그곳에서 한번 뵙고 싶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드려 방문하게 된 곳이 여기 <구상노사카바>이다. 구상노(구씨의) 사카바(술집). 고급 호텔의 일식집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러운 이름. 스시오마카세 뿐 아니라 테판야키, 이자카야로 다양하게 운영되는 곳이다. 뻔하게 운영되던 식당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건 구씨, 구민술 셰프님이다. 유수의 스시야에서 30년 가까운 경력을 가진 셰프님으로 밀레니엄힐튼에 스카우트되어 몇 년 째 이 곳을 총괄하고 계시다. 전현무보다 멋진 외모와 유려한 접객으로 여러 골수팬들을 보유하고 계신데, 함께한 신사분도 20년 째 셰프님을 쫒아다니고 있다며 덕밍아웃을 하셨다. 오마카세는 셰프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님은 나를 전혀 모르는 셰프에게 음식을 맡기고, 셰프의 스토리라인에 본인을 끼워맞추는 경험을 한다. 반면 믿음직한 셰프를 만나 오랜기간 합을 맞추면, 셰프는 손님을 위한 플롯을 짜오고 손님의 기분과 상태에 맞춰 유동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근간으로 진정한 맡김이 시작되는 것이다. 구셰프님의 접객은 유연하다. 준비되지 않은 손님에게 무리한 공격을 가하지 않으며, 손님 간의 대화가 무르익을 땐 한발짝 물러서고, 손님이 바랄 땐 오랜 친구처럼 장난스럽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음식에서도 셰프님의 캐릭터가 드러나는데, ‘밥 한 공기에 열두점’이라는 정석적인 사이즈와 네타-샤리 간의 균형감을 완벽하게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코스 구성과 색다른 재료 손질과 배합으로 손님들에게 끊임없는 즐거움을 안긴다. 두 가지 방식의 칼집을 입혀 입체적인 치감을 연출한 잿방어의 가마살, 껍질을 갈아 없애 아예 새로운 식재료로 탈바꿈한 문어다리, 캐비어와 라임으로 상쾌한 훈연향을 입힌 도화새우, 가볍게 토치질 후 아삭한 파를 올린 대광어 지느러미, 잘게 썰어 층층이 쌓아올린 여름 농어. 뭐 하나를 꼽기 어려울만큼 수많은 피스들이 뇌리 속에 강렬히 박혔다. 이 날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함께한 신사분의 반응이었는데, 20년 동안 수없이 만난 셰프님의 음식을 마치 처음 온 손님처럼 신기해하시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창밖의 풍경처럼, 매번 새로운 요리로 즐거움을 주는 셰프님이라고. 캬. 밀레니엄힐튼의 매각으로 곧 새로운 터전으로 옮길 예정이라는 셰프님. 신사분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겠다 하신다. 그래서 앞으로의 20년은 저도 꼭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instagram: colin_beak
구상 노 사카바
서울 중구 소월로 50 밀레니엄 힐튼 서울 지하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