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피자집. — 아침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퇴근 즈음 아내에게 화를 쏟아내곤 기분이 아주 깊게 가라앉았다. 회사를 나서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 시원하게 쏟아내지도 못할 거면서 거리를 축축하게 적시는 그 답답한 꼬락서니가 꼭 내 마음 같았다. 무작정 전화를 해 자리를 잡고, 버스를 타고 해방촌으로 달렸다. 비오는 날의 신흥시장은 예전엔 어쩐지 음침한 느낌이 있었는데 젊은 가게들로 채워진 지금은 참 운치가 있다. 가게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웃음소리를 뚫고 목적지로 향했다. <노아>. 간판에 “백 명이 한 번 먹는 음식보다 한 명이 백 번 먹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식당이름보다 더 크게 새겨둔 것을 보고 위시리스트에 담아뒀던 곳이다. 가게에 들어서자 잡다하게 채운 공간이 묘한 안락감을 준다. 잘 왔구나 싶다. 당초엔 피자 한 판에 와인이나 한 잔 할 요량이었는데, 메뉴판을 보는데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그렇게 술 대신 주문한 파스타. 이윽고 테이블 위 작은 화로에 불이 켜졌고, 그 위에 피자가 올려졌다. 음식이 참 따뜻하다. 도톰한 도우는 분명 내가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인데, 그만큼 푸짐하게 올린 치즈와 곱게 갈아낸 버섯 페이스트가 도우와 함께 입안을 꽉꽉 채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라구파스타는 마치 뵈프 부르기뇽처럼 푹 끓인 느낌이 나서 좋다. 예전에 즐겨보던 드라마 <소울메이트>의 주제곡이 연이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정신없이 음식들을 먹었다.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를 받으러 온 사람처럼. 오늘 이 곳의 음식이 채워준 허기는 분명 몸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옆 테이블에서 꽁냥꽁냥하는 연인을 턱을 괴고 한참 바라보다, 뭔가 결심한듯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꾹꾹 눌러썼다. 미안해 여보. 내 생각이 짧았어. instagram: colin_beak
해방촌 노아
서울 용산구 신흥로 98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