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속삭이는 이자카야. — 사케와 와인잔이 진열된 쇼케이스 앞 bar자리에 앉았는데 이자카야라기엔 분위기가 너무 근사하다. 옆자리엔 술에 얼큰하게 취한 남녀가 나란히 앉아있는데 오랜 우정이 취기에 녹아내리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늦게 찾아온 손님이 미안해야 할텐데, 재료가 많이 소진되었다며 식당이 더 미안해 한다. 별 것 아닌 직원분의 실수에 괜찮다 했는데 감태에 관자, 단새우, 성게알을 올린 값비싼 안주를 맛보기로 건낸다. 지역으로 식당 수준을 가늠하는 게 어찌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고급 일식의 격전지인 신사동의 이자카야들은 다른 동네 보다 음식 퀄리티가 한 차원 높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근데 이 곳의 음식은 그 동네의 이름난 이자카야 못지 않게 훌륭하더라. ‘카이센낫또’는 깍뚝썰기한 붉은살 생선에 낫또, 오크라, 마, 난황처럼 질척거리는 재료들을 총동원시킨 요리다. 다쿠앙, 쪽파, 와사비와 함께 비벼먹는데, 데이트에 적합한 메뉴는 아니지만 혼술하는 아저씨에겐 꽤나 매력적이다. ‘아나고덴푸라’. 아나고 튀김으로 좋은 경험을 한 적이 별로 없기에 반신반의하며 주문했는데 얇고 파사삭거리는 튀김옷에 폭신한 붕장어의 식감이 기분좋게 어우러졌다. 곁들이는 참마 튀김은 튀김옷을 최소화하고 녹진하면서도 아삭거리는 치감이 온전히 느껴지도록 했다. 주연 보다 빛나는 조연. 대화가 밤만큼 깊어진다. 왁자지껄하기 보단 은밀한 감정을 속삭이거나 서로의 사연을 속닥거리기에 좋은 곳이다. instagram: colin_beak
이치고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11길 6-7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