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발효, 그 사이에 서정. -- 흑백요리사에서 최현석셰프님과 호각을 다퉜던 ’원투쓰리‘ 배경준셰프님. 프로그램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이었기에 당시 리뷰를 쓰면서 배경준셰프님이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장면을 표지로 올리기도 했는데, 그가 이끄는 레스토랑 ‘본연’을 드디어 다녀왔다. 탁 트인 도심의 풍경이 식당을 감싸고 식사 공간은 휑하다 싶을 정도로 여유롭다. 달빛이 깃드는 테라스는 낭만으로 가득하고, 가게 한편에 놓인 장독과 항아리가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어느 셰프님이 안 그렇겠냐마는, 이 곳 셰프님도 식재료에 정말 진심인듯 하다. 식전에 “곳간”으로 불리는 방에서 음식에 사용되는 발효청들을 소개하는데, 엑기스란 표현이 더 어울릴만큼 긴 기다림의 시간이 용기 안에 담겨있다. 메뉴판에 꼬박꼬박 적어둔 17개의 산지명에서도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늘 느끼는 건데, 음식은 셰프를 닮는다. 진중하고 섬세한 셰프님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음식에 담겨있다. 장작불과 발효를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과거 모수에 함께 몸담았던 장진범셰프님과 궤를 같이 하지만, 장진범셰프님의 음식이 베토벤 비창의 격정적인 1악장이라면 배경준셰프님의 음식은 서정적인 2악장이다. 해방풍 나물을 곁들인 채끝 스테이크는 구워진 결이 마음에 꼭 들었고, 청둥오리는 시트러스한 고수씨앗의 디테일이 참 좋았다. 멸치볶음버터를 곁들인 보리빵과 갈치속젓소스의 가리비는 레스토랑이 지향하는 바를 가늠할 수 있었던 이 날 최고의 접시. 맞은 편 테이블엔 한껏 차려입고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듯한 딸이 아빠를 꼭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건너편 자리엔 미식과 삶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인이 앉아 계셨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시간.
본연
서울 강남구 논현로 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