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을지로를 건너느라 기운이 쏙 빠졌다. 날이 덥고 습하고 꿉꿉해서 헤엄을 치는 것만 같았다. 배는 고픈데, 국물은 뜨거워 싫었고 면은 금방 꺼질 것 같았다. 결국 떠올린 건 남의 살이어서 식당에 들어가 육회비빔밥을 청했다. 가지런한 야채들을 보고 젓가락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곤 밥그릇을 뒤집어 쏟고 숟가락을 고쳐쥐었다. 엄지로 숟가락 허리를 누르고, 숟가락 다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잡았다. 그리고 밥알을 힘으로 눌러 뭉개며 밑에 깔린 고기와 나물을 끌어당겼다. 골고루 비비려고 애쓰지 않았다. 숟가락 끝에 걸리는대로 그릇 벽으로 밀어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덜 비벼 짜면 국물로 지우고, 싱거우면 김치로 덧입혔다. 힘을 내려니, 밥도 힘있고 거칠게 먹어야 했다.
보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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