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을지로, 성북동
겨울이 너른 걸음을 내디뎠다. 흐린 하늘이 천천히 흘렀다. 바람엔 물기가 스며 묵직했다. 은빛 반짝이는 접시가 냄비를 덮었다. 그 위로 차곡차곡 앉은 닭껍질이 너부죽했다. 국물이 맑아서 밥을 섞고 싶지 않았다. 조금 찢은 김치를 흰 밥에 얹어 삼켰다. 얼었던 입에 짠맛이 돌았다. 닭껍질을 포개고 접어 양념을 묻혔다. 기름진 맛, 따뜻한 맛이 꼬들꼬들 엉겼다. 볼그스름한 살코기를 결 따라 찢었다. 생양파에 고추장을 찍어 퍽퍽... 더보기
동화 기사식당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47길 62
나무 간판과 붉은 탁자, 젖은 잉크 냄새가 나는 신문지. 그렇게 갑자기 젖어드는 오랜 기억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메뉴에 쓰인 ‘십낀소밥’은 아마도 십경소반(什景炒飯)을 말하는 듯했다. 대략 ‘갖가지볶음밥’ 정도의 뜻일 것이다. 볶음밥 속의 오징어, 버섯, 새우 따위가 따뜻하고 다채롭고 보드라웠다. 우악스런 단맛은 보이지 않았다. 기름맛에 헝클어지지도 않았다. 무 생채는 물기만 짜내서 고춧가루에 무친 듯했다. 잠시 매운 ... 더보기
홍성각
인천 미추홀구 한나루로 494
밥 덩어리가 저절로 허물어졌다. 아무 것도 더하지 않고 한 숟가락을 삼켰다. 겉치장 하나 없는 밥알들이 굴러다녔다. 맑은 기름내만 입 안에 따뜻하게 남았다.
신일반점
인천 중구 서해대로464번길 1-2
해바른 봄날, 한갓진 길목에 있는 오래된 가게였다. 문앞에 어색하게 앉았다가 동네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수런거리는 이야기들 사이로 주방에서 기름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아담한 만두가 좁다란 것이 몹시도 뜨거웠다. 기름이 자글거리지 않는데도 단단하고 뜨거운 김을 내뿜었다. 여러 번 이로 잘라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속 빈 곳 없이 똘똘 뭉쳐 담백하고 든든했다. 달지 않은 짜장에서 옅은 짠맛이 배어났다. 보들보들한 ... 더보기
천진반점
인천 미추홀구 토금북로 70
가지런한 배추김치와 흥건한 깍두기가 먼저 나왔다. 그 맛을 기억한 입 속에서 군침이 돌았다. 숟가락을 참지 못하고 흰 밥 한 술에 김치를 얹어 삼켰다. 새큼한 김치 첫맛이 이지러지고 매운 맛만 곱게 남았다. 벌건 국물에 잠긴 하얀 두부 위로 빨간 고춧가루가 그득했다. 파릇한 쪽파 사이로 다진 마늘 냄새가 진했다. 그릇 바닥까지 온통 희고 여린 두부로 가득했다. 국물이 끓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두부를 덥석 덜어 담았다. 부드럽고 ... 더보기
장모님댁
경기 가평군 설악면 자잠로 8
깻잎을 뒤집어 펼쳤다. 쫀득한 밀치 살을 얹어, 손으로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깻잎 향이 입 안을 휘감아 돌다가, 씹을수록 사라졌다. 그 뒤켠에서 밀치 단맛이 올라왔다. 밥 씹은 단맛처럼 길게 군침이 돌았다. 툭 불거지지 않고 은은하게 드러내며 느리게 배어났다. 와인 단맛으로는 누를 수 없었다. 단맛에도 질감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밀치는 무른 바람결 봄 내음처럼 달았다. 이렇게 겨울이 시들고 이울어 가는 모양이다... 더보기
길 수산
강원 양양군 현남면 새나루길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