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0320-0628) 작품은 이미지로 이전부터 숱하게 봐왔다. 닳디닳은 이미지에 시각적 충격은 없었지만, 순서는 중요했다. 삶이 시간의 배열이라면, 죽음은 기억 속에 남겨진 단상일 뿐이다. 상어, 벚꽃, 알약, 나비, 해골. 이 순서가, 이 배열이 끌어 올리는 내면의 감정이 있다.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유리 탱크 안에 박제된 상어에서 동물적인 고독한 죽음을 마주했다. 뒤이은 벚꽃 유화는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죽음을, 가지런한 알약들은 무기질적인 죽음과 망각을 투영했다. 나비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러 삶과 죽음의 변환은 성화(聖化) 되었고, 마침내 다이어몬드 두개골은 서양 미술사 속 바니타스의 정점을 찍는다. 물성에서 인성으로, 나아가 신성으로 향하는 이 족적은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서사, 그 자체였다.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