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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창
별로예요
3년

이름은 참 멋지게 지었다. 이런 술에 취해 거나한 단어가 있었다니. 도연하다. 감흥 따위가 북받쳐 누를 길이 없다. 도곡동 골목에 숨은 한식 주점. 심심풀이찬으로 들깨 상추줄기무침과 깻잎무침을 낸다. 하나는 식감, 하나는 허브향기로 맥주 안주가 된다. 석 잔 시키면 넉 잔 준다. 메뉴를 죽 훍어보니 그날그날 적절한 식재료로 안주거리를 내는 듯하다. 해물 육류 전 등 다채롭다. 청도미나리전 28,000. 세상에서 가장 비싼 미나리전일 것이다. 메뉴에 미나리해물전이 따로 있다. 25,000. 쉐프도 자기 메뉴 가격이 뭐가 뭔지 모르는 듯. 설마 미나리를 산지별로 나눠쓰지는 않을 것이고. 멸치회무침이 25,000. 한 웅큼. 미나리향이 좋다. 통영이나 기장에서 서비스로 나오는 딸림찬 기본찬이란 생각이 확 스친다. 아 여긴 도곡동이지. 현타가 밀려 온다. T bone 600g set 240,000 짜리 시키려했더니 없다네. 조금 있다가 서버가 쉐프에게 물어보고 와서 750g 짜리 딱 하나가 있어 해 줄 수 있다고. 단 단품으로. ㅎㅎ. 세트로 팔고 싶지 않다는 뜻. 100g에 무려 28,000. 하긴 이 동네에서 무엄하게 감히 가격을 논하다니. 익힘은 묻지 않았다. 압권은 따로있다. 병천순대. 넉 줄에 25,000. 서너점 있는 한 줄이 6,000원인 셈. 해도해도 좀 너무한다. 해물라면 12,000 넷이 나눠 먹고 나섰다. 허영만이 시골 백반 먹으면서 만원의 가치가 높다 말한다면, 아마 만원의 가치가 가장 낮은 동네가 여기일 것이다. 달디 단 발베니가 3만원 코키지에도 좀 썼다. 남의 돈으로 먹어도 남의 돈도 정말 아까웠다. ‘도연하다’에는 이런 뜻도 있다. 아무 일 없이 있어서 심심하다. 일없다. 도연하다. ‘별로’ 아래 등급이 있을까?

도연하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32길 5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