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웰터급, 구성과 맛은 헤비급 오마카세는 돈 내고 내가 음식을 고르는 것이 아니고 쉐프에게 음식을 일임하는 것이니 음식의 구성은 완전히 쉐프 마음대로다. 쉐프를 믿는 방식이다. 그래서 쉐프를 잘 알고 쉐프와 친하면, 나아가 단골이 되면 더 좋다. 사시미 한 점이라도 더 얻어 먹게 마련이다. 값은 헤비급이지만 구성이나 맛은 라이트급이나 훼더급인 식당이 얼마나 많은가. 값은 미들급인데 구성이 라이트헤비 나아가 헤비급인 오마카세를 만나면 행복하다. 그야말로 수지 맞는 일이다. 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는 이 집이 그랬다. 제자의 단골집. 맛있는 와사비와 생강절임 가리, 무절임 베따라즈케를 가지런히 하고 따듯한 차완무시로 손님을 맞는다. 단골인 제자의 식성상 와인을 즐기니 스시보다는 츠마미에 주력하는 구성으로 냈다. 1. 찐전복 무시아와비와 전복내장소스. 2. 시로미의 첫째가 자바리. 다금바리라 부르는 흰살생선. 탁한 흰 빛을 내는게 능성어와 구별법이다. 숙성을 약간한 자바리 소금다시마를 야꾸미한 첫 점은 이 날 저녁 식사의 강한 인상을 주었다. 미들급 맞아? 3. 쫄깃한 시마아지. 줄전갱이. 한 점은 소금에 한 점은 와사비 듬뿍 올려 간장에. 4. 동해산 생 참치. 아까미는 간장에, 주도로는 와사비 올려 간장에. 5. 꽁치뼈튀김. 뜽금없이 맥주 안주인 뼈튀김을 사이사이에 안주하라고 놓는다. 6. 아부리한 마다이. 참돔껍질을 잘게 썰어 야꾸미로 올렸다. 약간 익힌 도미 신선하다. 7. 시라코우니. 캐나다산 성게소를 따끈하게 구운 복어 정소에 올렸다. 이건 원샷에 먹고 와인도 원샷이다. 8. 야리이까이쿠라우니. 남대천 연어의 이쿠라를 올렸다. 강릉 바다가 입속으로. 9. 스페인산 마구로 오도로와 숯향입힌 뱃살. 기름진 걸작이다. 10. 노도구로 사시미. 금태를 약하게 아부리해 질기지 않도록 한 분홍 속살. 11. 대구 지리. 유자향 가득한 입가심. 구찌나오시. 12. 돌돔. 츠마미 이부의 첫점도 아삭한 혈압육과 촉감 좋은 시로미. 펄떡이는 돌돔이 느껴지네. 13. 줄가자미. 이시가리 사시미와 아부리. 새우내장소스. 제일 비싼 생선회 중 하나인데. 오늘 쉐프가 아주 작정을 했군. 14. 동해산 피문어 다리. 구운 양파를 올렸다. 제일 맛난 문어대가리도 한 점 줬으면. 아쉽다. 15. 향긋한 해삼내장. 고노와다. 그대로 먹어도 좋고 시로미를 찍어 먹어도 좋다. 16. 아구간. 안키모. 바다의 뿌아그라. 17. 해삼내장으로 버무린 이까. 미끈한 두 녀석이 참 잘 어우러진다. 18. 시메사바 두 점. 여기까지가 츠마미. 스시는 일곱점. 1. 참돔 마다이. 2. 미소시루. 3. 학꽁치. 사요리를 두툼하게 두 번 말았다. 4. 아마에비우니. 큼직한 단새우 두마리와 성게소 데마키. 5. 피조개. 아까가이. 큼직한 나비가 아삭한 식감을 준다. 6. 아까미즈께. 샤리를 거의 360도 둘러쌌다. 네타가 정말 크다. 7. 방어 뱃살. 기름지고 고소하다. 8. 아나고. 횡으로 잘라 얹어 타래를 듬뿍 바른. 9. 가리비 관자 아부리. 식사는 말린 청어 올린 니싱우동. 그리고 샤베트로 디저트. 대장정의 마침표. 100,000/인. 값은 미들급이 아니라 웰터급이나 라이트웰터급이다. 이거 받고 남나? 서초방배에서? 오늘은 단골특별메뉴인가? 역시 단골이 최고다. 세상의 모든 집을 단골할 수 없으니, 친구의 단골집을 같이 가면 된다. 친구들에게도, 제자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내 단골집으로 스스럼 없이 불러 내어 함께 즐기는 게 세상 사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모처럼 맛있고 즐거운 헤비급 오마카세 만났다.
스시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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