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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창

추천해요

1년

냉면과 스노비즘 윤여정이 시상식에서 일갈하여 더 유명해진 snobbish peoples. 스놉은 속물이란 뜻도 있지만 ‘지성인인 척하며 젠체하는 허영심 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스노비즘은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잘 알지 못하면서, 남에게 과시하고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 및 허영을 말한다. 영국인들 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분히 스노비시한 경향을 갖고 있다. 미식에도 대표적인 스놉이 있으니 바로 와인이다. 와인을 많이 마셔봐도 와인맛을 잘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와인은 잘 모르면서도 분위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누구나 한 번 쯤은 와인 스놉이 되기도 한다.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도문제다. 지나치게 아는 척 하면 꼴불견이 된다. 그저 즐겁게 마시고 느끼는대로 표현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음식에서 스노비즘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평양냉면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은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자주 먹고, 어느 정도 표현할 줄 알아야 미식가에 끼어 주는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칼칼하고 간간한 음식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음식 가운데 가장 양념이 절제된 음식중 하나인 평양냉면은 상대적으로 제 맛을 잘 느끼기 어렵다. 대부분 이게 무슨 맛이 있냐고 하기 마련이다. 혀끝과 코끝에 스치는 듯 지나가는 향들을 찰나에 붙잡아 느끼기 어렵다. 그렇다고 육수를 와인처럼 입에 물고 있을 수도 없고. 소가 장화 신고 건너간 것 같은 물에, 밍밍하고 툭툭 끊기는 허연 국수를 먹으면서, 육향이 어떠니, 곡향이 어떠니 등 나는 아무 맛도 못 느끼는데, 체면상 맛있다고 해야 하니, 이게 나만 못느끼는 건가 때론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럴필요 없다. 느끼지 못한다면 그집 냉면이 그런것이다. 억지로 스놉이 될 필요는 없다. 냉면도 와인처럼 그저 즐겁게 먹고 마시고, 느끼는대로 표현하면 되는 일이다. 냉면은 고해성사하듯 정색하고 앉아서 온 후신경과 미각신경을 총동원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부담없이 야참으로, 선주후면의 후식으로 먹는 음식이다. 쌀이 귀한 평안도에서 봄여름엔 소,돼지나 닭, 꿩고기 국물에 말아서, 겨울엔 동치미 국물에 말아서 밤참으로 혹은 해장용 아침으로 먹었던 음식이 냉면이다. 야식이나 후식이니 억지로 느끼려고 먹지말고 부담 없이 즐기면 되는게 냉면이다. 여러 가지 향과 맛을 느끼게 되면 좋은 것이고 감사한 것이고, 못느껴도 그만인 것이다. 피안도에서 중앙면옥, 안면옥, 제일면옥과 함께 손꼽히던 기성면옥을 그대로 이어 간다는 자부심. 냉면에 식초나 겨자 등 아무것도 첨가해 넣지마시고 그대로 드시라는 권면에도 식당의 자긍심이 묻어난다. 면은 희고, 약간의 탄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70-80% 메밀. 육수는 흐린 갈색에 약간 탁하다. 동치미맛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한여름이라 그런가. 또아리를 튼 면의 볼륨이 좋다. 고명으로 올린 무가 익은 무김치가 아니라 희디흰 절임이다. 고춧가루나 배추김치 없는 고명. 내겐 기가 막힌 해장 점심 냉면이 되었다. 이집의 명물은 제육. 냉면육수를 내기 위해 삶은 고기를 썰어 내는 수육이 아니다. 따로 만든 요리. 족발처럼 여러 가지 향신료 넣은 간장에 잘 삶아 제육편 표면의 풍미가 대단한 제육이다. 온도도 참 좋다. 뜨끈뜨끈. 해장하러 왔다가 이 돼지수육에 그만—-. 냉면맛 표현에 부담 갖지 말자. 그냥 즐기자.

기성면옥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87 수지제일 아이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