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연향의 향연 인류는 훈연향을 좋아한다. 스모키 플레이버. 연기에 쏘인 냄새, 약간 탄 내 같은 연기의 냄새다. 훈연향이 나는 음식이나 술은 대개 맛있다고 느낀다. 먼 옛날 인류의 조상 때에 동물을 잡아 생으로 먹다가, 불을 발견하고 불에 그을려 먹기 시작할 때부터 맡은 냄새. 훈연향은 아마 소금을 사용하기 전부터 인류가 좋아하는 음식의 첫 풍미가 되어 유전자에 각인 되었을 것이다. 훈연향을 맡는 순간 안도하면서. 오늘은 굶지 않고 먹을 게 있구나. 오늘은 죽지 않겠구나. 이 얼마나 맛있고 행복한 냄새인가.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안도감의 냄새. 그래서 연기 없이 안전하게 조리할 수 있는 근대에 와서도 인류는 이 훈연향을 그토록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불이란 이름을 가진 식당. 첫 세비체부터 마지막 디저트까지 훈연향이 난다. 우드화이어 그릴을 사용한다. 훈연향을 증미할 수 있는 방법은 훈연 파프리카 가루, 훈연올리브유, 훈연 소금, 검은 카다멈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하나 이런 방법도 사용하는 지는 내 둔한 혀로는 알 수 없다. 새우세비체에 적양파를 채쳐 올리고 고수를 듬뿍 얹었다. 사과나무 훈연향이 식객들을 매료시킨다. 이 첫 접시가 임팩트 있다. 고수는 언제나 추가다. 전갱이를 살짝 훈연해 익히고 마늘과 아몬드, 식초와 올리브오일로 만든 아요블랑코 소스로 버무리고 처빌을 올렸다. 훈연한 한치를 너비로 썰어 데친 미나리와 감자퓨레 위에 올리고 칠리오일을 둘렀다. 한치구이와는 또다른 우드화이어 풍미. 컬리플라워 구이. 이번에도 가장 인상적인 메뉴. 컬리플라워 퓨레 위에 잘 구운 컬리플라워를 두르고 파마산치즈를 갈아 덮었다. 대구. 잘 구운 대구토막을 토마토 퓨레 위에 올리고 훈연마늘로 만든 아이올리 소스를 얹었다. 빠깔라우와 삘삘은 너무 고식적인가. 이 대구 요리도 참 촉촉하고 맛있다. 마늘과 마요네즈, 머스타드와 레몬즙으로 만든 아이올리소스도 스모키하다. 가슴살과 닭다리살 그릴하여 훈연한 매쉬와 구운 쪽파 그리고 닭날개jus. 가슴살의 육즙이 압권. 삶아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익힘. 이베리코 프레사. 어깨의 승모근. 등심이 아닌데도 부드럽고 촉촉하게 잘도 구워낸다. 구운 파프리카와 양파, 견과류, 파마산,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넣고 갈아 만드는 로메스코소스. 소고기라고 해도 다 믿을 듯하다. 양갈비. 할라피뇨, 고수, 파슬리와 큐민을 갈아 만드는 그린 하리사 퓨레 위에 프렌치랙을 잘 구워 올리고 쿠스쿠스와 함께 낸다. 소스 같은 퓨레의 고혹적인 향이 대단하다. 이 집은 육류도 좋지만 해물이 더 좋다. 민어와 병어. 하나는 기름지고 하나는 크리미한 생선살. 민어는 구워 펜넬 위에 그리비쉬 소스를 얹어 낸다. 소스 그리비쉬는 완숙 계란 노른자와 겨자를 카놀라유나 포도씨유와 같은 중성 오일로 유화시켜 만든 프랑스 요리의 차가운 계란 소스. 병어는 등살과 뱃살을 나누어 구운 양배추 위에 올리고 삘삘소스를 둘렀다. 바스크요리의 대표 빠깔라우와 찰떡 궁합인 삘삘. 대구의 젤라틴과 올리브오일로 만드는 소스를 병어와 매칭했다. 신선한 조합. 내 입에선 병어가 민어를 이겼다. 디저트. 판나코타 위에 스모키한 통카빈 쵸컬릿. 사과파이는 카다이프 위에 올린 애플스트럿. 훈연향으로 시작해 훈연향으로 마감한 스모키 대장정. 그리고 히비키 한 잔. 이 향은 소리 향이다. 음식이 전체적으로 다 간간한, 인류 조상이 좋아했던 원초적 flavor를 잘 구사하는 식당. 식객들의 분위기는 우드화이어 만큼 뜨거웠고, 식탁 위 오고가는 대화는 훈연향만큼이나 향기로웠다.
푸에고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