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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창
추천해요
2년

구교혁의 흑돼지 교향시 쉐프가 지향하는 흑돼지 요리법은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흑돼지 고기 자체의 순수한 맛을 잘 살릴 수 있는 가’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의도는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1. 불을 써서 고기를 익히되 훈연향을 가능한 한 배제하기 위해 숯이 아닌 말린옥수수를 태워 고기를 굽는다. 2. 불에 구울 때 고기에 첨가하는 것은 고기 자체의 육즙과 녹인 지방 뿐이다. 향신료나 소금은 쓰지 않는다. 3. 1부에 쉐프가 매칭하여 내는 와인은 레드가 아닌 화이트 와인. 적포도주의 탄닌이 혀를 지치게 만든다 한다. 4. 고춧가루 하나도 없는 묵은지나 물김치 조차도 거의 질감만을 사용한다. 쉐프가 고기를 굽는 방법은 다양했다. 불판에 고깃덩이를 던져 놓고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굽는 동시에 토치로 삼면에 불질도 하고, 손으로 꾹 눌러 그릴마크도 내고, 부지런히 뒤집고, 때로 두꺼운 지방층에는 칼집을 내고, 내장 지방을 토치로 가열해 녹여 고기위에 떨구기도 하고, 구울 고기를 지방덩이 위에 얹기도 하고, 지방으로 고깃덩이를 덮기도 했다. 처음보는 동작들이 많았다. 손으로 다 한다. 화염 위에서 손이 날아다녔다. 불판이 마치 피아노 건반 같았다. 덩어리로 익힌 고기는 더운 물 위에서 레스팅하는 것도 있었고, 익힌 고기의 육즙과 지방을 짜내 도마위 고기에 끼얹는 놀라운 방법도 보여 주었다. 이건 쿠킹이 아니라 한 편의 연주라 보는 편이 옳다. 음표하나 틀리지 않는 연주처럼 악보에 그려진 순서 그대로 고기가 구워져 접시에 올려졌다. 어떻게 하면 고기를 맛있게 구울 수 있냐고 물었다. 쉐프의 답은 ‘지방을 익히는 동안 살코기의 수분감을 잃지 않는 것’이 비결이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노릇노릇하게 굽느라 수분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아하 이제야 쉐프의 굽는 동작들이 이해가 간다. 부위마다 두께와 지방과 근육의 구성이 다르니 굽는 방법도 달리 하는 것이다. 그의 손동작이 너무 빨라 식객들이 잘 캐치하지 못할 뿐. 윗등심. 이 사진 한 장이 쉐프의 모든 내공을 말해 준다. 바깥은 크러스트를 만든 듯 바삭하게 마이야르, 속엔 육즙을 가득 부드럽게 가두고. 돼지고기라고 바싹 익히지 않는다. 잘 구운 좋은 고기는 소금조차도 필요없다. 자체로 간이 되어 있다. 맛있다. 고기를 내는 순서가 궁금했다. 식객이 질문했다. 보통은 담백한 부위부터 시작하여 진하고 기름진 맛으로 가는데. 쉐프의 답은 ‘앞의 고기맛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오호. 이런 뜻이구나. 한없이 크레센도로 갈 수 없으니. 강약중강약으로 노래의 한 마디를 구성하듯이 고기를 즐기는 순서에 리듬을 넣었다. 1부가 1악장 윗등심, 안심, 아랫등심, 가브릿살, 2악장 첫줄 삼겹 윗살, 첫줄 삼겹 아랫살, 등갈비살, 3악장 아랫 삼겹, 세로살 및 삼각살, 갈매기살. 완벽한 소나타 형식이다. 첫줄 삼겹의 윗살은 광배근이 포함되어 근섬유가 굵다. 씹히는 맛이 있고. 그 아랫살은 오랫동안 단맛을 낸다. 이웃해 있는 부위인데 이런 차이가 있네. 삼겹살은 직사각형으로 구워낸 중심. 배받이 복직근이다. 입에 넣고 씹었을 때 스시 같은 느낌이 온다. 잘 만든 스시가 네타와 샤리가 동시에 스르르 없어지듯이 살코기와 지방이 동시에, 놀랍게도 붙은 껍데기도 한꺼번에 스르르 없어진다. 껍질, 지방, 살코기 삼합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맛이란. 아하. 이래서 지방을 구울 때 고기부분을 기름이불로 덮었었구나. 그래서 토치를 사용해 사방으로 동시에 열을 가하는구나. 오호라. 삼겹살도 노릇노릇하게 굽지 않고 이렇게 육즙을 가둬 구워야 하는 거구나. 생선이 종류마다 그리고 부위마다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두께와 모양이 다르듯, 돼지도 마찬가지다. 목살과 갈매기살과 항정살로 보여 준다. 아니 느끼기 해 준다. 얇게 결 반대로 썬 갈매기, 결대로 뭉텅 썬 갈매기의 저작감. 항정살의 대조적인 식감들. 갈매기엔 연태를 한 잔씩 동반했다. 이 어울림, 이 마리아주. 이제부터 갈매기에는 고량주다. 1,2부 사이에 인터미션. 고기 먹을 때는 끊기면 짜증내는 녀석들이 휴식을 반기네. 쉐프는 음식양이 많다고 두 번 사인을 준다. 첫 점 아롱사태 낼 때 양이 작은 분들은 국물 다 드시지 마세요. 중간쯤 ‘식사하는데 체력이 필요하다고 느낀’손님들도 있어요. 부위마다 한 점 씩만 먹는데도 양이 정말 많다. 1부가 소나타라면 2부는 변주곡이다. 목살을 주제로 다양한 변주를 펼쳐 나간다. 6개의 변주를 한다. 두께, 크기, 지방과 살코기의 비율, 저작감. 다른 맛을 보여 준다. 네번째 목살이 가장 보편적인 식감의 변주 주제. 두번째 목살별미는 목살 사이의 기름을 구워 주는데 꼬들하며 맛있다. 세분하여 먹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가를 알려준다. 그 미묘한 차이를. 항정살을 얇게 바싹 구워 와사비, 두툼하게 구워 육즙 가둔 아삭한 식감을 주는 피스 하나씩. 마지막에 족발의 껍데기와 지방을 바삭하게 구워 내고, 살짝 양념한 갈비살로 대미를 장식했다. 마지막엔 쉐프가 질문을 한다. 가장 좋았던 부위 셋을 고르라고. 저마다 이유가 제각각이다. 나는 기본을 골랐다. 어느 피스나 다 맛있었으니까. 마지막 연주를 마치자, 네 명의 식객 모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감동적인 연주. 밥 먹고 기립박수하기는 모두 처음이었다. 6시반에 시작한 강의는 12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돼지를 이해할 때까지 얼마나 많이 헤쳐보고, 분리해서 먹어보고, 작은 차이를 알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구워 봤을까.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얼마나 많이 갖가지 방법으로 먹어 봤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돼지만 생각했을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쉐프는 작곡을 공부했었다고 한다. 그의 ‘흑돼지’ 교향시를 다시 듣고 싶다. 방문한지 며칠 지나 리뷰를 쓰려고 메모한 종이들을 꺼내 보았다. 향긋한 기름내가 난다. 우리가 돼지고기 식당에 갔다온 다음 옷에서 나는 냄새는 기름냄새가 아니라 숯내와 고기가 탄 냄새구나. 기름만 탄 냄새는 처음 맡아 본다. 향기로웠다.

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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