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프랑스 파리에 처음 방문했을 때, 쇼핑 타운 ‘베르시 빌라주’에서 난생 처음 들어본 햄버거 하나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가 말하기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좋아해서 ‘오바마 버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해 아직까지도 내겐 그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파이브 가이즈’가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옛날에 한 번 먹어본 햄버거라는 게 그제서야 떠올랐다. 너무 오래 전이라 맛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희미했지만 맛있게 먹었던 장면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극악무도한 웨이팅이라는 진입장벽을 뚫고도 방문을 결정한 건 과거의 추억을 한 번 되짚어 보고 싶었기 때문일 터다. 무엇보다 나는 SNS 핫플 방문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니까. 오전 9시에 대기등록을 한 결과, 내게 떨어진 숫자는 169번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평일 아침에 이렇게 무자비한 웨이팅이라니 주말 피크 타임엔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알 만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일찍 등록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비도 내리는 날이었는데..) 그들의 부지런함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친구와 나는 허기짐을 안고 묵묵히 기다렸고, 열두시 반쯤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픈 시간 기준으로 1시간 반 정도 기다린 셈이니 대기 인원에 비해서는 입장 속도가 꽤 빠른 편이었다. 2층으로 이뤄진 내부는 방문자 수에 비해 넓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테이크아웃 고객이 많아 테이블을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감자튀김을 땅콩기름에 튀겨 만드는 곳이라 그런지 1층에는 땅콩을 무료로 한 봉지씩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코너가 있다. 주방에서 퍼져 나오는 땅콩기름과 서비스 땅콩의 향이 섞여 매장 안에는 고소함이 가득했다. 나는 땅콩을 안 좋아해서 먹어보진 않았는데,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한리필 하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고. 다들 손에 땅콩을 쥐고 주문을 기다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종의 전단지처럼 생긴 종이 메뉴판을 셀프로 가져갈 수 있게끔 배치해 놓아 편하게 주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치즈버거와 베이컨치즈버거, 그리고 탄산음료와 쉐이크를 한 잔씩 주문했다. 감자튀김은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어 제일 작은 Little 사이즈로 시켰다. 이렇게 주문했을 때, 총가격이 52,000원이 나올 정도로 햄버거 기준으로는 가격이 많이 비싸다. 뭐 어쩌겠음… 또 언제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궁금한 건 다 먹어 봐야지… 패스트푸드 가게답지 않은 특장점이 한 가지 있다면 토핑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굳이 빼고 싶은 토핑이 없다면 ‘올더웨이’로 주문하면 된다. 최대한 풍부한 맛을 느끼려면 빼는 재료 없이 먹는 게 좋지 않을지. 쉐이크도 초콜릿, 딸기, 피넛버터 등 원하는 재료를 믹스할 수 있다. (이건 추가해도 금액이 안 붙는다.)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을 경우엔 우리에게 익숙한 바닐라 밀크쉐이크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주방이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는데, 그만큼 버거가 나오는 속도도 빠르다. 테이크아웃이든 매장에서 먹든 상관없이 트레이 따위는 주지 않는다. 커다란 종이봉투에 버거와 프라이를 모두 넣어주는데, 테이블에다 봉지를 쫙 찢어 펼치면 마치 노동 후 배식을 받아 먹는 기분이 든다. 먹다 보면 버거가 머금은 수분이 줄줄 흐르고, 게걸스럽게 먹는 몰골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못볼 꼴 다 보고 산 혈육이나 친구들과 함께 오는 걸 추천한다. 토핑 구성으로 보나, 버거 번으로 보나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분명 한국에서 익숙하게 먹어보지 못했던 맛이 난다. 아마 소스에서 차별화가 이뤄진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베이컨치즈버거보다 치즈버거의 맛이 훨씬 깔끔하고 토핑과 소고기 패티, 빵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 느꼈다. 바싹 구운 베이컨이 들어가 짭조름한 맛이 강한 버거도 충분히 맛있지만 내 취향으로는 담백한 쪽이 좀 더 끌렸다. 흔히 미국 버거를 떠올렸을 때 언급되는 혈관이 막힐 것 같은 수준의 햄버거와는 거리가 멀지만, 확실히 양은 일반적인 버거보다 많았다. 감자튀김에 쉐이크까지 함께 먹는다면 하루종일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 야채를 적당히 활용한 토핑도 좋았고, 특히 소스와 함께 어우러진 구운 버섯이 리치한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감자튀김은 리틀 사이즈임에도 3-4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양이 장난 아니었다. 케찹을 찍어먹긴 했지만, 땅콩기름에 튀긴 덕인지 그냥 먹어도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듯했다. 맛있긴 했지만 버거보다 호평받을 만한 지는 의문. 다인원으로 방문한 게 아니라면 굳이 주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평소 감튀를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 웨이팅과 가성비에서의 악조건을 모두 고려해도 맛에 대한 만족도가 우세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한 번쯤은 인고의 기다림을 겪고 시도를 해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언젠가 인기가 한 풀 꺾이는 시기가 온다면,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지만 과연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을지… 🍔 맛: 4/5 가격: 치즈버거 14.9 베이컨치즈버거 17.4 감자튀김(Little) 6.9 ℹ️ 위치: 신논현역 7번출구 웨이팅: 3시간 이상 영업시간: 11am-10pm 분위기: 미국 프랜차이즈 버거집 방문일: 2023.07.18
파이브 가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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