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 그 많던 돼지갈비집은 다 어디 갔을까?! 1.한반도 식문화에서 통상 고깃국이라 하면 그 고기는 ‘소’를 의미했다. 조선 시대 초기만 해도 고려 시대로부터 넘어온 도축과 조리 기술로 소의 도축이 횡행하자 농업의 주요 수단인 소를 보호하기 위해 <우금령>이 내려졌으며, 문헌에는 정조가 신하들과 <난로회>라는 소고기 화로 구이 미식회를 열었다는 기록까지 있다. 2. 돼지고기가 우리네 일상에서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 부흥기였던 1970년대 전후해서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국민들의 삶은 풍족해졌으며 이에 따라 식생활 역시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며 고기 소비량이 늘어나니 미처 수요를 따라가지 못 했던 소고기의 대체재로 사랑받기 시작한 음식이 바로 돼지고기이다. 3. 서민음식으로 통하는 돼지고기의 발상지는 바로 서울의 마포이다. 한양도성이 자리한 종로가 서울 양반들의 중심지였다고 하면 마포는 당시 성업했던 목재산업 종사자들과 나루터를 오가는 도성 바깥 서민들의 중심지였다. 이에 대한 영향으로 돼지고기는 마포를 중심으로 돼지갈비, 주물럭, 갈매기살, 주먹고기 등 다양한 형태의 메뉴로 개발되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간다. 4. 돼지갈비는 급격히 올라간 서민들의 여가 생활 수준을 상징하는 당시 <가든 문화>와 함께 굉장히 인기있는 아이템이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소갈비는 너무 비쌌고, 백반과 국밥은 무게감이 없었으며, 생선회 등의 음식은 누군가는 먹기 어려운 음식이었으니 달달한 간장 양념으로 남녀노소 호불호가 없으며 넓고 큼지막하게 포를 낸 갈비를 숯불에 구워먹는 돼지갈비의 인기는 대단할 수 밖에 없었다. 5. 양념돼지갈비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육 품종의 다양화와 숙성 기술이 더해지며 돈육 소비량이 오히려 늘어난 시점부터이다. 거기에 삼겹살 목살 외 항정살과 가브리살, 뽈살 등 다양한 부위의 공급이 이루어지니 부위 상관없이 동일한 맛을 내게 하는 <양념돈육> 식당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꼽은 서울의 노포 돼지갈비 맛집이 있으니 대표적인 식당이 1985년 개업한 망우동의 용마갈비와 1973년 개업한 용산의 용문갈비이다. 7. 엄청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부모님과 함께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었던 돼지갈비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안다. 스뎅대접에 담겨나오는 돼지갈비의 순한 양념과 정갈하면서도 가지런하게 담아준 무생채에 담긴 세월의 맛을.. 8. 강렬한 입맛을 선호하는 현 세대에 맞춘 돼지갈비는 캐러멜 설탕이 너무 들어가 불판에 엉겨붙은 양념은 타고, 고기 먹고난 후 기분 나쁘게 입안에 자리잡은 찐득한 느낌에 얼마나 찝찝했던가?! 9. 더군다나 이 집은 여느 돼지갈비집에서도 주지 않는 비장의 한수가 있으니 바로 <동치미>이다. 큼지막한 무가 들어간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를 일인 한그릇씩 주는데 서울에서 이정도 동치미를 먹어본 적이 있던가 생각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식당이 없는걸 보니 이 집은 동치미 맛집이라 해도 무방하다. 10. 후식으로 주는 김치냉면 역시 훌륭하다. 모든 것이 세월의 흐름을 먹은 식당인데 냉면 그릇은 유기이다. 유기가 살균 등의 효능은 있지만 무겁고 관리가 쉽지 않은데.. 어쨌건 다소 새콤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은 입맛을 깔끔하게 행궈주기도 하지만 만족에 만족을 더해주는 무료 서비스이다.
용문 갈비집
서울 용산구 새창로 127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