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 기사식당 돈까스의 성지, 서울 성북동 1.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유튜브도 없었던 시절 가장 공신력있는 맛집 정보는 <택시 기사님들의 추천>이였다. 1970년대만 하더라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 10위 안에 꼭 랭크되었던 것이 <새나라 택시 기사>였고, 1980년대 고바우 영감이라는 4컷 만화에 신년 소원 1위는 <My car>였으니 그 당시 기사님들의 사회적 지위는 지금보단 높았으리라. 2. 이 식당의 개업 시기는 1990년으로 올해 30여년이 되었다. 우리나라 외식산업에 있어 기념비적인 이벤트가 바로 1988년 올림픽이다. 아시아 대륙을 넘어 5대양 6대주 모든 국가의 축제다보니 한식과 중식 위주의 당시 외식산업은 급격하게 서양식에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3. 나비 넥타이에 검정 베스트를 받쳐입고 접시에 밥과 돈까스 등을 서빙해주는 경양식 레스토랑의 급격한 확산기도 이 당시로 기억한다. 4. 기사식당의 성공 포인트는 <속도>이다. 빠르게 음식이 나오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기사식당 메뉴의 특징이다. 이에 한가지 조건을 더하면 “가정집에서 먹기 힘든 별미”인데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칼질해서> 먹을 수 있는 돈까스이다. 5. 기사식당 돈까스의 타겟 고객층 자체가 미식가가 아니다보니 맛있다를 주긴 어려우나 7080세대에게는 <성북동 기사식당 거리>의 음식이 주는 향수가 있다. 비록 가격은 이제 11천원대로 훌쩍 점프했을지언정 여전히 내 유년 시절 기억 속 그대로 곰의 얼굴만한 사이즈 접시 가득 돈까스와 생선까스, 함박과 샐러드, 밥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음식은 미각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억으로도 먹는 것이다. # 추가잡설 1 서울의 돈까스 기사식당촌이라 할만한 곳이 두 군데 있으니 성북동과 남산이다. 남산 왕돈까스는 레스토랑마다 일본식 돈까스로, 스파게티와의 조합으로 다양하게 진화하였지만 성북동은 여전히 추억 속 경양식 돈까스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남산 왕돈까스의 고객층이 내국인에 한정되지 않고, 중국/일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명동 상권>의 영향을 받은데다 <남산 케이블카>라는 관광 명소와 연계한 방문고객층의 변화가 메뉴의 진화를 불러온 것으로 추정된다. # 추가잡설 2 경양식당과 기사식당 돈까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양>이다. 그리고 기사식당에서 찌개와 김치에 익숙한 입맛의 사람이 압도적인 양을 질리지 않고 <포만감있게> 먹기 위한 장치가 있으니 바로 풋고추와 깍두기이다. 중국집과 중식당 차이가 <짜사이> 유무라면 경양식당과 기사식당 차이는 <풋고추>라 해도 무방하다.
원조 오박사네 왕돈까스
서울 성북구 혜화로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