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만난 49년 업력의 돼지국밥 1. 국에 밥을 말아먹는 탕반은 지역과 혈연 공동체로 엮인 농경 사회의 대표적인 음식 문화라 할 수 있다. 대량으로 조리가 가능한데다 별다른 반찬 없이 먹을 수 있고 즉시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잔치 음식으로 제격이다. 2. 이런 국밥 문화는 도축고기의 유통 경로, 지역 특산품 등에 따라 다른 형태로 존재해왔다. 황태덕장이 있는 인제와 철원 등지에선 황태국밥이, 물이 맑은 전주 지역에는 콩나물 국밥이, 경기도에서 축산업이 발달했던 양평에선 소의 양과 내장을 주재료로 한 해장국이, 한국 전쟁 당시 임시정부가 세워졌던 부산에선 돼지국밥이 바로 그렇다. 3. 서울의 탕반 문화는 광화문 청진옥, 용산 창성옥 등에서 판매하는 선지가 들어간 해장국이다. 그 다음으로는 서민들이 호불호없이 즐겨하는 순대국이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4. 그런데 오늘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서울에선 만나기 힘든, 부산에서도 밀리지 않을 수준의 <돼지국밥>을 경험하였다. 1972년 개업하여 2대로 이어오는 노포인데, 간판에는 상호보다 더 크게 “순대국 전문”이라 되어 있으나 실제 내가 주문한 특메뉴는 돼지국밥에 더 가까웠다. 5. 방산시장에서 일하시는 상인 혼밥 차림에 특화된 식당인지 쟁반 한상에 국밥과 새우젓, 깍두기와 마늘, 다대기가 정갈하게 내어진다. 기본적으로 밥말이로 제공되며, 기가 막힌 비율로 다대기가 토핑되어 있다. 우선 다대기를 풀어헤치지 않고 국물을 몇 머금 떠먹어봤는데 돈사골로 끓여낸 국물이 담백하다. 첫맛은 밍밍한 것 같았으나 입맛이 국물의 간에 적응하자 이는 담백함으로 다가온다. 6. 상차림에 내어준 편마늘은 국물이 뜨거울 때 바로 국밥에 투하하여 익혀내는데 이는 부산 근무 당시 부산 토박이분들께 곁눈질로 배운 방식이다. 7. 다대기를 풀기 전 국물의 원형을 맛보고, 수저를 휘휘 저어 빨간 국물로 만들었는데 순박한 인상의 시골 처녀가 립스틱 바른 것만으로도 세련미 넘치는 도시의 캐리어우먼으로 변신하듯 담백했던 간은 이주 제대로 똑 떨어진다. 8. 개인적인 입맛 차이일테지만, 편마늘과 토핑으로 얹어주신 다대기만으로도 간을 제대로 맞춰냈는데 이 많은 양의 새우젓은 어떤 용도인가 싶었더니 수저수저마다 걷어올려질 정도로 수북한 수육의 짝꿍이었다. 통상 국물의 간을 맞추는 용도의 새우젓은 소금에 절여낸 젓갈 그 형태대로 내고, 순대나 수육 등의 컨디먼트 용도의 젓갈은 양념 형태로 내주는데 이 집의 새우젓은 후자에 속한다. 9. 주방에 계량 저울 하나 없는데 대충 수저로 한 스푼, 한 움큼, 한 꼬집 퍼내면 그게 또 세월이 만들어낸 완벽한 계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포는 그런 곳이다.
개미집 순대국전문
서울 중구 을지로35길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