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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찬
추천해요
3년

* 한줄평 : Since 1932, 남대문 은호식당에 관한 호기심 개업년도 1932년 국밥 식당이라면 분명 ‘노포 국밥 식당 순례자’를 자처하는 내가 어떤 식으로든 인지하고 있어야 할텐데 알게 된 시점이 불과 두어 달 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식당은 음식에 관한 나의 상식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퍼즐이 어느 정도 맞춰졌기에 기록을 남긴다. Q 1. 일제시대 개업한 당시 음식점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상호에 ‘옥’을 사용했고, 광복 후 생긴 음식점은 한자로 ‘관’이라는 글자를 주로 사용하였다. 대표적으로 1939년 개업한 ‘한일관’은 원래 ‘화선옥’이란 상호로 영업을 하다가 1945년 한국 최고의 식당이라는 염원을 담아 개명하였다. 대부분 50여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노포 대부분은 ‘옥, 관 또는 집’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데 서울에서 4대째 대물림되는 음식점의 상호에 요즘처럼 ‘식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였다. Q 2.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은 공급과 수요 중 무엇이 우선인가? 라는 질문과도 맞닿아있다. 그러나 과거 음식점의 ‘상권’이라는 개념에는 결국 수요에 맞춰 공급된다라는 전제가 숨겨져 있다. 그런데 서민들의 소비 공간인 재래 시장에 단가가 비싼 ‘꼬리곰탕’ 메뉴라니 뜬금없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시장의 방문 목적은 식사가 아닌 ‘장을 보러 오는 것’이라 시장 음식 대부분 가성비가 좋거나 빨리 먹고 일어설 수 있는 메뉴가 인기인데 시장에서의 꼬리곰탕은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Q 3. 대부분의 노포는 개업년도가 명확하지 않다. 개업년도가 명확하고, 식당의 역사가 일목요연한 곳은 십중팔구 가문 중심으로 대물림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개업년도가 명확하지 않고 대충 얼버부려 오십여년이라는 노포는 대부분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창업주가 식당을 개업한 시기를 알지 못 한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갈치 조림 식당 대부분이 노포를 자처하지만 개업년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80여년을 훌쩍 넘은 은호식당은 부침이 많았던 남대문 시장에서 과연 혈통으로 내려온 노포가 맞나?! 라는 것이 마지막 호기심이었다. * 식당의 역사 은호식당의 시작은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대로 일제 시대 개업한 상호 작명 방식에 따라 <평화옥>이었다. 당시 남대문 시장 가판대에서 해장국으로 이름을 날려 평화옥을 차리신 분이 ‘김은임 할머니’이고, 나중에 친딸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가게 된 할머니로부터 가게를 넘겨받은 이가 평화옥에 야채를 대며 김은임 할머니와 모녀처럼 지냈던 2대 ‘이명순 할머니’이다. 1971년 2대 이명순 할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며 상호는 평화옥에서 <은성옥>으로 변경하게 된다. 현재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인 꼬리곰탕과 방치찜도 이때쯤 메뉴가 개편되며 새롭게 선보인 것으로 보인다. 남대문 시장은 서민들의 소비공간이었지만, 또한 한국은행과 세무서 등 인근 공무원들의 식사 공간이기도 했다. 워낙 접대가 흔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싸지만 몸에는 좋은> 보양음식, 꼬리곰탕은 그야말로 빅히트 상품이었다. 평화옥에서 은성옥으로 작명가에게 비싸게 돈을 주고 상호를 바꿔서 그런지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1985년경 위기를 맞게 되는데, 가게 건너편 가스통 트럭 사고 여파로 가게는 불타게 되고 2대 이명순 할머니는 다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또다시 작명소를 찾아가 새로 받아온 이름이 바로 지금의 <은호식당>이다. * 음식품평 국물은 뜨끈했고 진했다. 꼬리고기와 밥으로는 살짝 모잘랐던 양은 서비스 국수로 충분했다. 다만 뼈에 붙어있는 고기를 떼어먹는 수고로움을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상 1만원의 설렁탕보다 가성비가 좋지는 않았다. 그간 꼬리곰탕을 많이 먹어봤던 것도 아니기에 비교군도 없다. 다만 분명 몸에 좋았을 거라는 플라시보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은호식당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4길 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