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 깊은 내공이 엿보이는 경양식 돈까스 1. 내가 국민학교를 다녔던 80년대만 해도 미소 냉전이 서슬퍼랬던 시대인지라 한국 전쟁 당시 우리를 원조했던 미국은 곧 서양을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서양에서 들어온 것들은 곧 <선진국의 문물>이었고, 이를 즐기는 것은 곧 선진국민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에 한발 다가가는 행위에 가까웠다. 서양에서 들어온 신식 문물은 양복, 양옥, 양식 등 어김없이 ‘양’자가 붙어있었고 한복, 한옥, 한식 등을 밀어내고 들풀처럼 인기가 들고 일어났더랬다. 2.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게임 등 지구촌 대축제를 방문하려는 세계인을 맞이하기 위해 설렁탕과 찌개, 삼겹살 등 한식 위주의 외식 업계에 서양인들을 위한 레스토랑이 크게 인기였으니 바로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 등을 팔던 <경양식당>이다. 3. 당시만 해도 서양의 격식을 따라 홀담당직원은 조끼에 나비넥타이와 기지바지를 입었었고, 밥과 샐러드가 별도 접시에 제공되는 등 현재 기사식당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풋고추와 깍두기가 제공되는 한국식 돈까스보다는 좀 더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4. 사실 경양식 돈까스만큼 <대중의 요구>에 충실히 반응한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질보다는 양에 치중했던 배고팠던 시절이니 고기를 넓게 펴 커보이게 만들었고, 당시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조리법인 기름에 튀겼기에 느끼함을 상쇄할 깍두기 등이 제공되었고, 밥을 함께 먹는데 국물이 필요하니 식전 스프와는 별도로 기사식당에서는 장국이나 미역국 등이 따로 제공되기도 한다. 5. 이만큼이나 대중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했건만 90년대 중반 훨씬 더 다양하고 고급스럽고 심지어 더욱 서양스러웠던 <캘리포니안 레스토랑>의 습격에 지리멸렬하니 이젠 서울에서 제대로 된 <경양식 돈까스>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6. 2016년 석촌에 개업한 <오로라경양식>의 의의는 바로 멸종당하다시피 한 ‘기사식당 이전의 경양식 돈까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데 있다. 7. 식당의 업력은 이제 불과 5년여이지만 경양식 경력은 30년이라고 하는데 실제 내온 음식에서 엿보이는 자부심은 충분히 그럴만하다. 8. 얼치기 경양식당은 오뚜기 스프 가루를 이용해 묽게 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집의 야채 크림 스프는 눅진하니 이 다음 나올 음식에 대한 기대치를 올려준다. 더군다나 기사식당 이전 경양식당에서 하던대로 밥과 샐러드는 별도 그릇에 제공되니 주인장이 번거로움을 조금 더 감수하는 대신 손님의 만족도는 더 올라간다. 9. 주문 메뉴는 돈까스와 함박, 새우 후라이가 나오는 오로라 정식, 돈까스, 생선까스이다. 돈까스는 넓어진 면적만큼 고기 두께가 얇아질 수 밖에 없는데 고기를 씹는 식감이 제법 나는 걸로 미루어 보아 면적과 두께의 반비례 황금 비율을 이뤄낸 듯 하다. 돈까스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생선까스의 맛과 양은 아쉬운 점이 많다. 10. 돈까스 가격이 7,500원임을 생각하면 작은 양은 아니나 아무래도 이 음식을 찾는 이들이 추억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중년 남성이 주 수요계층이란 것을 감안하면 좀더 많은 양을 즐길 수 있는 <더블 돈까스>같은 메뉴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11. 가니쉬 역시 직접 만드신거라 하는데, 올리브나 양파절임보다는 좀더 대중적인 마카로니와 당근조림 등이였더라면 만족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싶다.
오로라 경양식
서울 송파구 백제고분로39길 33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