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순라길은 유난히 혼자 가기가 어려운 동네다. 연남이나 로데오 같은 곳도 나름 혼자 잘 돌아다니는 편인데, 이곳은 이상하리만큼 진입장벽이 느껴진다. 길거리에 혼자 걷는 사람도 드물고, 대부분 화려하게 차려입은 20~30대 여성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그 분위기 자체가 혼자 걷는 사람을 다소 위축되게 만든다. 그런 이유로 서순라길에 가볼 일이 잘 없었지만, 북촌 쪽에 일이 있어서 나온 김에 오랜만에 서순라길 맛집 중 한 곳을 들러보기로 했다. 서순라길을 대표하는 몇 군데 중,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곳은 일본 라멘집 ‘보루도 라멘’이었다. 보루도 라멘은 주택가 골목 초입에 숨어있는데, 지도 앱을 보고 찾아가도 약간 헷갈릴 수 있는 위치다. 예전에는 관심이 크지 않았던 집이지만, 작년쯤 리뉴얼을 하면서 전반적인 맛이 확 바뀌었고, 이후로 리뷰 평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곳은 돈코츠 라멘을 전문으로 한다. 예전 같았으면 진한 돈코츠 국물만 들어도 거부감이 들었을 텐데, 막상 한 숟갈 떠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국물은 진하다 못해 거의 스프에 가깝다. 걸쭉한 농도에 고소한 기름이 스며들어 있고, 돼지 비린내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돈코츠 라멘집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올라오기 마련인데, 이 집은 깔끔하게 잡아냈다. 면은 심지가 살아 있는 타입이다. 하카타식 라멘을 연상케 하지만, 재미있게도 밀가루 냄새는 거의 없다. 국물의 진한 맛과 면의 식감이 조화를 이루면서 씹는 맛이 꽤 괜찮다. 차슈는 목살 부위로 보인다. 얇은 대신 육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스타일이다. 흔히 보는 부드럽고 도톰한 차슈와는 다른 느낌인데, 오히려 이렇게 고기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차슈가 더 좋다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멘마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멘마를 잘 안 먹는 편인데도, 이 집 멘마는 고소하고 짜지 않아서 끝까지 다 먹게 된다. 멘마 하나만 봐도 이 집이 재료 손질에 신경을 쓰는 게 느껴진다. 절반쯤 먹었을 때 식초를 살짝 넣으면 무거웠던 국물이 확 가벼워진다. 또 테이블에 비치된 가람마살라를 넣으면 카레 풍미가 퍼지면서 전혀 다른 국물이 완성된다. 맛계란은 속까지 따뜻하고 반숙에 가까운 반반숙 정도다. 노른자가 흐르면서도 중심은 익어 있는 느낌.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한 그릇이었다. 국물, 면, 토핑 구성 모두 깔끔했고, 특히 여성 손님이 많은 이유가 납득되는 맛과 분위기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양이다. 라멘을 먹고도 양이 적다고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가격이 13,000원이면 저렴한 편은 아닌데, 양은 확실히 부족하다. 공기밥 하나 추가하거나 사이드 메뉴를 함께 먹는 게 좋겠다. 돈코츠 라멘이 부담스럽거나, 진한 국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집에서는 의외로 거부감 없이 한 그릇 비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진한 돈코츠 라멘을 찾는다면, 이 집은 리스트에 올릴 만한 가치가 있다
라멘 보루도
서울 종로구 서순라길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