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시절엔 저녁 중심에 전통주 위주의 운영이었죠. 청담동에선 주류 필수 없이 가볍게 들러도 되는 분위기입니다. 막걸리는 없어 살짝 아쉬웠고, 소주는 한라산을 주문했습니다. 두 동네의 차이는 첫걸음에서부터 체감됩니다. 연남은 바 초점이 선명했고 좌석이 타이트했습니다. 청담은 홀이 넓고 동선이 편안해 한 접시의 여유가 생깁니다. 연남의 ‘청/진’ 같은 실험은 기억 속 화두로 남고, 청담은 담음새와 접근성에서 단정함이 돋보입니다. 평양냉면의 이야기는 고명에서 시작됩니다. 수비드로 결을 살린 홍두깨살이 핑크빛으로 얇게 누웠습니다. 젓가락에 올리면 매끈히 찢어지고, 입에 닿자마자 미세한 단맛과 고소함이 번집니다. 차게 식힌 고기결이 국물과 만나면서 맛의 윤곽을 또렷하게 그립니다. 면은 가늘고 팽팽합니다. 첫 젓가락에서 호로록 미끄러지듯 넘어가고, 마지막까지 탄력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메밀 향은 과시하지 않고 뒤에서 받쳐 주는 쪽입니다. 고명과 육수의 톤을 묶어주는 실선 같은 역할입니다. 육수는 유리잔 같은 투명함에 목소리가 있습니다. 첫 모금은 담담하게 시작하고, 마실수록 감칠과 온도가 입 안에서 피어납니다. 염도는 신상 냉면집들 중에서는 낮은 편입니다. 의정부나 장충 계열보다는 약간 높고, 우래옥 계열보다는 낮게 느껴집니다. 육향은 기존 평냉의 결과 살짝 다릅니다. 외국 우유를 마실 때 스치는 향처럼 크리미한 여운이 뒤에 남습니다. 크리미라는 말을 아껴 쓰고 싶지만, 그 결이 분명히 오래 머뭅니다. 내장은 첫맛에 양념이 살짝 수줍습니다. 대신 원물은 야들야들하고 손질과 조리가 매끈합니다. 양념이 약하다 느껴지면 아래 깔린 고추기름을 살짝 끌어올려 한번 더 묻혀 드셔 보세요. 삼삼한 결이 좋다면 부추와 함께 집어 올리면 양의 탄력과 향이 고르게 살아납니다. 평양냉면의 맑은 국물과 번갈아 먹으면 대비가 또렷해지고, 한라산 한 잔이 자연스럽게 길어집니다. 바이럴이 과한 집이라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막상 마주하니 비주얼을 넘어 맛의 뼈대가 단단했습니다. 결국은 고명과 면, 육수, 그리고 한 접시 안주가 한 호흡으로 완성하는 그릇이었습니다.
우주옥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70길 9 1,2,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