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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지
3.5
2개월

멸종 직전의 유슬짜장을 찾아서 서울에서 유슬짜장을 찾는다는 건 마치 단종된 만화책의 1권을 헌책방 뒤적여 찾는 것 같은 일입니다.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맛은 각별하지만 사라져가는 음식. 그나마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가 영등포의 동순각이고, 또 하나가 바로 세운상가의 동해루입니다. 처음 동해루 간판을 보면 살짝 당황하게 됩니다. "이런 데도 식당이 있네?" 싶은 외관. 세운상가의 낡은 건물 속 어딘가, 한참을 헤매다가야 겨우 찾게 되는 곳인데요. 막상 들어가 보면 손님이 빼곡합니다. 주변 상인들, 어르신들, 그리고 요즘엔 노포 성지순례하는 젊은 손님들까지. 세운상가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집의 저력을 실감합니다. 사실 처음 주문하려다 '깐쇼하일'이라는 메뉴명을 보고, 이게 뭔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검색해도 안 나오길래 결국 유추한 결과, 깐쇼새우(깐샤오시아런)를 '깐쇼하인', 그리고 '깐쇼하일'로 쓰는 노포 스타일 변형. 이런 표기법은 흔하지 않지만 가끔 오래된 중식당에서 발견됩니다. 이 또한 이 집의 연륜이 드러나는 한 단면이죠.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깐쇼가 아니라, 바로 유슬짜장. 하얀 면이 슬로 썰어진 재료들과 함께 쟁반에 담겨 나옵니다. 보기만 해도 때깔이 훌륭하고, 당장 비비고 싶은 비주얼입니다. 다만, 동순각처럼 면과 슬의 조화는 조금 아쉽습니다. 특히 오늘은 조리 퀄리티가 살짝 떨어졌는지, 전분이 재료에 좀 과하게 남아 있어서 뒷맛이 약간 텁텁했네요. 면 자체는 전분기 없이 잘 삶아졌고, 유슬 특유의 순한 간장풍 짜장 소스는 나이 있으신 분들 입맛에도 잘 맞을 듯합니다. 하지만 동순각만큼 정제된 맛은 아니라, 비교하자면 조금 거칠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서울에서 유슬짜장을 정식 메뉴로 상시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은 지금은 영등포의 동순각, 그리고 이곳 세운상가 동해루 정도. 이 두 곳마저 사라지면 유슬짜장은 그야말로 메뉴판 속 전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엔 꼭 점심시간을 피해, 조리 퀄리티가 안정적일 때 다시 와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왔습니다.

동해루

서울 종로구 종로26길 18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