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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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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월

이 곳, 뚝도 농원은 내가 오래 전부터 노리고 있던 곳이다. 내가 좋아했던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 보고 꼭 가봐야지 체크해둔 게 벌써 한 2년은 넘은 것 같은데 성수동 자체를 올 일이 거의 없어서 잊고 있다가 이번에 드디어 방문했다. 가게가 대로변에 위치해 있는데 언뜻 봐서는 음식점 느낌이 아니라 회사 창고 같은 느낌이다. 미리 생김새를 봐두고 가지 않으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법 하다. 뚝 도 농 원 이라고 간판이 붙어있긴 한데 시간이 흘러서인지 간판이 색과 빛이 바래서 눈에 잘 안 들어온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는 약간 바랜 느낌이 더 잘 어울리긴 한다. 입구로 들어서면 대기석과 캐치 테이블 키오스크가 있고 특이하게 락커가 있어 짐을 보관할 수 있다. 대기실을 지나서 진짜 입구로 들어가 직원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 된다. 전체적으로 직원분들이 서비스 매뉴얼을 잘 숙지하고 계신 듯 편차 없이 안정된 친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메뉴판을 보는데 좀 낯설었다. 내 기억에 이 곳은 오리고기만 파는 곳이었고 오리 한마리 메뉴가 있었던 곳인데 메뉴에 돼지고기 메뉴가 더 많이 보였다. 오리 로스구이는 맨 밑으로 내려가 있고 오겹살, 가브리살, 항정살이 메인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인데 2년 전 기억만 가지고 최신 정보 업데이트 없이 방문했던 나는 혼자만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년 전 메뉴를 먹고 싶었으면 2년 전에 왔어야지. 오리 로스 고추장 주물럭을 원하면 1000원이 추가된다. 메뉴판에는 숙성 파소스도 적혀있는데 문의해보니 지금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일단 오리 로스 2인분을 주문했다. 주문을 하면 불판이 달궈진 후 처음 한 판은 설명과 함께 직접 구워주신다. 오리 로스는 두 가지 부위의 오리 고기와 호박이 함께 나온다. 부위는 가슴살과 다리살. 개인적으로는 가슴살이 더 맛있었다. 그리고 오리 로스를 먹어본 입장에서, 이 메뉴는 여럿이 왔을 때 많이 시켜서 먹기에 좋은 메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다리살의 경우 2인분에 나오는 양이 굉장히 애매해서, 뭔가 제대로 한 판 구워먹는 느낌이 나지 않고 부스러기 굽는 느낌이 난다. 한 4인분? 5인분 이렇게 주문해서 한판 가득 구우면 새마을식당에서 열탄불고기 굽는 느낌도 나고 괜찮을 것 같다. 오리 맛은 나쁘지 않았다. 통후추가 섞인 소금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알이 엄청 큰 마늘 장아찌와 함께 먹어도 좋았다. 김치는 석박지와 갓김치가 나오는데 석박지가 단맛 없이 맵싹하니 맛있어서 한 접시 뚝딱 하고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청양 고추 소스도 나오는데 이건 매워서 못 먹었다. 2인분 먹어도 배가 그닥 부르지 않아서 고기를 추가했다. 이번에는 가브리와 항정 각각 하나씩 주문하고 그렇게 핫하다는 감자밥을 추가로 주문했다. 항정과 가브리도 두툼하니 고기 질도 좋고 맛있었다. 둘이 이렇게 고기 4인분 먹으니까 배가 든든하게 차는 느낌이었다. 잘 먹는 사람은 인당 3인분은 뚝딱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감자밥. 이게 왜 핫한거지..? 그냥 찐감자 올린 밥인데..? 물론 버터와 명란 등이 같이 올라가 있지만 이건 그냥 거들 뿐이고.. 내 생각에 감자가 좀 더 포슬포슬하게 익어서 잘 으깨져야할 것 같은데 딱딱해서 잘 섞어지지도 않았고, 명란은 밥 위에서 금세 익어버려서 아쉬웠다. 이날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감자가 좀 덜 익은건가? 싶기도 하고.. 이게 핫한 이유를 아내랑 생각해 봤는데, 우리 어릴 때는 감자가 구황작물로 늘 쪄서 먹던 것이라 익숙하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핫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에 오더라도 주문하지는 않을 메뉴이며, 명란을 줄거면 차라리 따로 접시에 내서 적당한 시점에 직접 얹어서 먹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오자마자 다 익어버린 명란이 너무 아쉬웠다. 차라리 순두부 찌개를 먹을걸.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특별했던 메뉴 구성이 너무 평범해진 것도 아쉬웠고, 숙성 파소스가 없다던가 순두부찌개에 오리알이 더이상 들어가지 않는 등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경험할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 분명 맛있고 친절했지만 지금 구성이라면 굳이 성수동을 일부러 가서 먹을만큼의 매력은 없다는 생각. 다만 성수동을 이미 왔다면 식사 장소로 고려해보는 것은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친다.

뚝도농원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 82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