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으로 보건데, 한국 짜장면은 지난 30년째 꾸준히 퇴화하는 중이다. 가끔 왜일까를 고민하며 책들도 찾아보고 했는데, 정부가 물가관리 정책으로 짜장면 가격을 통제해온 것도 이유일거고, 성공한 화교 주방장들이 미국으로 많이들 이민간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하고, 가게마다 직접 만들어 쓰던 춘장이 사자표 춘장이란 단일 제품으로 통일된 것도 맛의 다양성이 줄어든 계기라고 한다. 수타로 뽑던 면을 쉽게 기계로 뽑기 시작한 것도, 면에 탄력을 쉽게 내려고 그리고 배달중에 면이 덜 불게 하려고 첨가제를 마구넣기 시작한 것도, (중국집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중간 조리를 미리 잔뜩해놓고 주문받고서는 마지막 조리만 해서 나가는 관행도 다 일조했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동네에 수타를 하는 중국집은 잘 없었던 것 같다. 사자표 춘장이 1948년에 설립됐으니 80년대면 강남의 동네 중국집들은 이미 다 이 제품을 쓰고 있었을 것 같고. 그렇다면 내가 어렸을 때도 이미 짜장면은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을텐데, 그럼에도 당시 우리에게 짜장면은 꽤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짜장/짬뽕이란 질문에 항상 짜장만 선택하던 나는 이제 짜장면이 맛이 없어서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문득 아직 남아있는 여전히 맛있는 짜장면 집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변한건 내 입맛이 아니라 짜장면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찾아간 중국집이 쌍문동의 원성반점이다. 이왕 시작하는 짜장면 투어니까 잘 가기 힘든 먼 동네에 있는 가게를 스타트로 정했다. 태어나서 처음 와봤다, 쌍문동. 이런 이름의 동네는 영화에서나 봤던 것 같은데. 1977년에 설립된 곳이니 꼬박 햇수로만 45년을 채운 노포다. 지금 사장님은 2대째 사장님이고 따님이 카운터를 보고 있다. 주방에도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 일하고 있다. 사실 계산하면서 따님에게 음식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계획이었는데, 덩치가 산만한 사장님이 바로 옆에서 벽에 기대어 쳐다보고 계셔서 잘 먹었다고 꾸벅 인사만 드리고 나와버렸다. 가게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가격이 무척 싸다는 점이었다. 간짜장이 6,000원이고 탕수육(소)가 14,000원이다. 거기다가 이 두개를 세트로 같이 주문하면 가격이 14,000 + 6,000 = 15,000 이 되고 서비스 군만두가 나온다. 거의 탕수육을 주문하면 간짜장을 덤으로 주는 셈이다. 음식이 나온 양을 보니 탕수육 양이 적지도 않다. 역시 쌍문동, 멋진 동네다. 음식을 주문하니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다. 홀 상황을 지켜보니 주문이 많이 밀려서라기 보다는 주문을 받고 나서야 면도 뽑는 등 공정이 그렇게 세팅된 곳이다. 동네 중국집이라 차가 아니라 물을 주는데, 맹물이 아니고 보리차다. 보리차라.. 거의 1년만에나 마셔보는 것 같다. 문득 어릴때 처음으로 생수를 마셨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한 25분이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군만두, 탕수육, 간짜장 순서로 음식이 나왔다. 이 가격에 서비스 군만두야 크게 기대할게 없기에 한개만 먹고 탕수육으로 넘어갔다. 고기튀김마냥 처음 한개는 간장에 찍어서만 그냥 먹어봤는데, 찹쌀 탕수육 스타일이라 어울리지 않았다. 탕수육 소스에 찍어먹으니 식감은 이제 얼추 맞는데 역시 간이 좀 싱겁다 싶다. 이 탕수육은 간짜장 소스와 같이 먹어야 잘 어울린다. 간짜장이 단맛이 매우 적고 짠맛 위주의 짜장이라 이집 탕수육이 무척 잘 맞는다. 탕수육 없이 먹었으면 좀 짰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맛이다. 간짜장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단맛이 매우 적은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신성각처럼 극단에 있는 맛은 아니다. 평소 요즘 짜장면이 너무 달아서 불만인 사람이라면 추천할만한 짜장면이다. 수타는 아니지만 주문을 받고서야 뽑는 면, 잘 볶아져서 면을 먹으며 젓가락으로 계속 같이 떠먹게 되는 간짜장 소스. 구수하고 간단하지 않은 춘장 맛. 엄청나게 맛있는 짜장면이라기 보다는 내가 어릴때 짜장면은 이런 맛이었는데 하는 맛이었다. 운이 좋게도 짜장면 투어의 첫 가게로 적절했다는 생각. 사장님은 덩치가 크셔서 괜한 위압감이 있지만 (사진중에 사장님 뒷모습 있음) 따님분은 무척 친절하고 살가웠다. 여러가지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문이었다. 다음 가게는 어딜가지.. (댓글로 추천 받습니다)
원성반점
서울 도봉구 노해로 233-1 1층
doh @doh0112
광성반점 가보셨나요 매운 간짜장을 파는데 완전 매워요 ㅋㅋ 방문하신다면 덜맵게가 적당합니다
하드셀쳐 @seltzer
@doh0112 면이 짜장에 볶아서 나온다니 완전 흥미가 가는걸요. doh님 추천 감사합니다. 조만간 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