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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서 열아홉에 부여된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한 가지 특권을 부여하는 것만 같았다. 이른바 "거칠 것 없이 달려가고 이루라"는 특권(드라마 <청춘의 덫> 中). 설익은 혈기에 밤을 지새우다 아침 해가 밝아올 때 오늘 해낸 일들과 버틴 시간을 기록하는 게 낙이었다. 대학생이 되고서 이 낙은 성취할 일들에 대한 계획으로, 필요한 시간에 대한 계산으로 이어졌다. 서른의 나는 오늘과 내일 사이 간격을 조바심으로밖에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다리는 거 좋아해요, 잘하고." 배우 문가영이 유퀴즈에 출연하여 남긴 말이다. 스쳐가듯이 영상을 보고는 생각했다. "기다리는 걸 잘해서 뭐해?" 산책을 나왔다. 신호등 앞, 노래 한 곡을 다 채우지도 못할 찰나의 시간. 온갖 짜증이 밀려왔다. 휴대폰 시계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초록불이 켜졌다. 깨달았다. 아, 나는 기다리는 걸 못하는 사람이구나. 나에게는 커피가 아니라 다른 것이 필요했다. 내일의 환상에 안달나게 만드는 열정이 아니라, 오늘의 찰나에 머물게 만드는 여유가. 모교 명원박물관 권역에 찻집이 들어선지 오래다. 계동의 티 오마카세 전문점 <갤러리 더 스퀘어>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다. 학생들의 지갑 사정과는 괴리가 있는 가격대에 잠시 머뭇거린다. 하지만 통유리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경 한켠에 자리하는 값이라면. 그 생각에 두들기던 계산기를 결국 내려놓게 된다. 한 템포씩 느려지는 흐름 속에서 서서히 젖어가는 정자를 바라본다. 그제서야 들려오는 가랑비 소리. 빗소리에 맞춰 말차를 한 모금 머금는다. 유리창에 가로막혀 있었던 풀내음 향이 쌉싸름한 감각과 함께 넘어간다. 우산을 펼쳐들고 명원박물관 앞 신호등에 멈춰섰다. 나의 현실이 감각을 되찾는다. 이 공백을 이루는 소소함이 좋아진다.

차담

서울 성북구 정릉로9길 68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