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먹고 다니다 보면 양식의 경우는 파인다이닝이나 격식 갖춘 가스트로 레스토랑보다, 완성도 높은 요리 몇 개만 내는 비스트로에서 눈이 번쩍 띄이는 “맛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꽤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요 몇 년간은 프렌치 요리를 좀 더 가볍게 즐길 만한데, 맛도 “응?” 할 정도로 눈이 번쩍 띄이는 곳들이 많아졌습니다. 파인이나 청담동 대형 리스토란테들이 재료도 더 비싼 걸 쓰고 여러 가지 시도도 많이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더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식 파인은 창의적이고 퓨전적인 개성이라는 카테고리에 너무 매몰되는 경향도 있죠. 맛 자체는 클래식에 셰프의 스타일이 은근히 녹아든 그런 음식들이 미각적인 면에서도 부족하지 않고, 대여섯 테이블을 널찍하게 쓰는 식당들이 훨씬 느긋하고 편하게 식사하기 좋습니다. 편하게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게 레스토랑 가서 먹는 이유일 텐데, 파인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편안함을 제공해 주는 공간이 아니죠. 저도 1년에 두어 번 정도는 남의 돈으로 파인을 가기는 하는데, 남의 돈임에도 그렇게 막 만족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라망시크레 한 번 갈 돈으로 잘하는 비스트로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게 훨씬 낫죠. 요즘은 흑백의 영향으로 파인급에 대한 환상이 너무 강한데, 경험 삼아 한 번쯤 가보겠다면야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평생 경양식 비후까스가 제일 비싼 양식이었던 분들이 파인 간다고 그 맛을 온전히 느끼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요즘은 흑백에 나온 셰프들 식당이 워낙 성업 중이다 보니, 되려 다른 실력 있는 식당들이 좀 더 예약 잡기 편해졌습니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오늘 간 곳이 바로 이런 프렌치 비스트로입니다. 네 테이블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인데 이름도 강렬합니다. “아트”와 “떵”. 한 번 들으면 잘 안 잊힙니다. ㅋㅋ 아트와떵은 “À trois temps”, 그러니까 삼박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마 음식, 와인, 손님의 삼박자 같은 뜻이겠고, 결국 와인을 시키라는 뜻이겠죠. ㅎㅎ 런치는 와인 필수가 아니지만 디너는 와인을 주문해야 합니다. 다만 보틀로 시켜야 하는 건 아니고, 인당 잔술 한 잔 정도만 주문해도 됩니다. 가끔 이 주류 필수에 대해 낯설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음식을 조금 합리적인 가격에 내는 대신 술 주문으로 채산을 맞추는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술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논알콜 음료도 있으니 그쪽으로 가셔도 괜찮고요. 이날은 글래스와인을 먼저 마셔봤는데, 꽤 개성 있는 것들이 나옵니다. 화이트는 배의 단맛에 우엉의 살짝 떫은 느낌, 그리고 상큼한 달달함이 있고, 까바는 딸기화채에 탄산을 탄 듯한 맛이 납니다. 무난하게 예쁜 와인보다 자기 색이 있는 쪽이라 더 재밌었습니다. 가격대도 프렌치치고는 꽤 괜찮은 편입니다. 전채는 만 원대 초중반, 파스타는 2만 원대, 메인은 3만 원대 중심이고 소고기만 조금 더 올라갑니다. 요즘 물가 생각하면 꽤 선방하는 느낌입니다. 닭간빠떼는 플레이팅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맛도 역시 심상치 않고요. 전형적인 간빠떼와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야채와 과일, 견과류와 함께 먹는 디저트 같은 전채에 가까운데, 닭간의 농후한 질감에 애플망고의 단맛, 비트의 산미, 견과류의 고소함이 계속 돌아가면서 맛이 변주됩니다. 평소 간 같은 내장 부위를 선호하지 않는 분에게도 권하고 싶은 메뉴였습니다. 개성 있는 화이트와 함께 먹으면 입안이 꽤 즐겁습니다. 맛있어서 싹싹 긁어 먹게 되더군요. 겨울에 볕 들어오는 자리에서 이걸 먹고 있자니 괜히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인스타에서 본 이벤트 때문이었습니다. 양파 세 개 들고 오면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반값이라니… ㅋㅋ 집에서부터 양파를 세 개 들고 갔습니다. 구입한 지 좀 된 거라 싹이 많이 나서 괜찮나 싶었는데, 사장님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정말 겨울용입니다. 그뤼에르 치즈와 캐러멜라이즈된 양파가 듬뿍 들어간 걸쭉한 수프인데, 추운 날 먹으면 온몸의 한기가 싹 빠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건 괜히 정석 메뉴가 아니죠. 단순한데 맛있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조개 레몬 버터 생면 파스타는 이 집의 시그니처라고 해도 될 메뉴입니다. 사진만 봐도 프렌치식 파스타 특유의 눅진함이 느껴지는데, 막상 먹으면 레몬이 타이밍 좋게 버터의 묵직함을 딱 끊어줘서 느끼하거나 질리지 않습니다. 조개살과 육수, 버터 풍미가 한 덩어리로 입안에 들어오는데, 생면의 식감이 또 좋습니다. 생면인데도 알덴테처럼 뚝뚝 씹히는 맛이 있고, 통통한 조개와 식감이 잘 맞습니다. 이런 메뉴는 소스만 진하다고 되는 게 아닌데, 면까지 잘 맞아떨어져서 더 만족스러웠습니다. 메인은 프렌치 스타일의 양고기가 궁금해서 프렌치랙과 양파 라비올리로 주문했습니다. 부위를 나눠서 내주고, 매시드 포테이토와 시금치, 양파 라비올리가 같이 붙습니다. 익힘은 미디엄레어 정도였고, 지방이 많은 부분부터 살코기 쪽으로 먹으라고 안내해 주는데, 신기하게 지방에서도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살아납니다. 매시드 포테이토와 시금치 간도 좋아서, 곁들이는 채소라고 대충 넘어가기 어렵더군요. 결국 레드 와인도 한 잔 더 시켜서 나눠 마셨습니다. 이것도 꽤 좋았습니다. 단맛을 쫙 뺀 깔끔한 복분자 같은 느낌이 있는데, 고기랑 붙이면 더 잘 살아납니다. 디저트로는 크림브륄레를 먹었는데, 이것도 허투루 내지 않습니다. 바닐라빈을 아낌없이 써서 단맛보다 바닐라 향이 먼저 확 올라옵니다. 디저트까지 정성 들여 마무리하는 집은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이날 날도 유난히 좋았고, 식당도 느긋했고, 음식은 하나같이 잘 나왔습니다. 이런 집이야말로 요즘 프렌치의 재미를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비싼 파인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다시 느끼게 해준 식사였습니다.
아트와떵
서울 마포구 동교로50길 25 1층 101호
빵에 진심인 편 @awsw1128
아트와떵은 뭐 말이 필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