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별 보다 좋던 걸. — 먹은 경험이 남부럽지 않은 내게도 다이닝은 여전히 어려운 존재다. 수 끼에서 수십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을 한 끼에 투자해야 하기에 그만큼 기대치도 높을 수 밖에 없고, 그 기대치를 깨기 위해선 셰프의 역량만큼 이를 받아들이는 나의 견식도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에 한 번 가보라 추천해주고 싶은 식당이 있다. 역삼동의 ‘수묵당’. 지금은 사라진 미슐랭 3스타 식당 ‘가온’ 출신의 고영준 셰프님이 이끄는 이 곳은 10만원이 되지 않는 가격으로 열 가지에 달하는 요리를 맛보고, 6.5만원에 다섯 가지 술을 페어링할 수 있다. 나눗셈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고, 다이닝씬을 좀 더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뼈를 깎아 만드는 가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매니저님의 유려한 안내를 따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코스. 맛의 과잉이 없이 수묵화처럼 여백을 남겨둔 요리들은 나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핵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프렌치를 전공하고 최상급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던 셰프님인 만큼 음식 속에 섬세함과 번뜩임이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이 날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의외로 콩국수와 닭날개구이였다. 콩국수는 감칠맛을 더한 콩육수에 국수를 단아하게 말아 넣고, 그 위에 오이, 당근, 수삼, 참외로 만든 4색의 고명과 겨자에 버무린 닭고기를 올렸다. 그리고 튀기듯 바싹 구워낸 닭날개는 그 속에 삼계죽을 넣어 보양의 느낌을 더했다. 담담하게 풀어낸 이 요리들이 어쩐지 내 마음 속에 가장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익숙한 듯 새롭게 풀어내는 게 진짜 실력인 것 같다. 힘을 줄 곳만큼 힘을 뺄 곳을 아는 사람이 진짜 고수인 것 같고. 여기가 그랬다. — www.instagram.com/colin_beak
수묵당
서울 강남구 도곡로23길 33 1층
Luscious.K @marious
골프도 힘뺄줄 알아야 고수인데…. 똑같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