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아오링 도쿄>의 어느 에피소드, 아마 제목이 <우동>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기에는 “우동을 보면 나는 100% 그 친구를 떠올린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일본에 사는 작가 본인을 오랜만에 찾아준 절친한 친구는 계속해서 우동을 먹고 싶다고 말하지만, 작가는 친구에게 그런 시시한 음식을 먹일 수 없다며 한사코 다른 진미를 대접한다. 결국 일본을 떠나기 직전 작가의 친구는 “우동 먹고 싶어. 속이 헛헛해서 따뜻한 국물 먹고 싶어.”라고 털어놓는다. 그 말을 듣고서야 뭔가가 묵직하게 작가의 머리를 내려치지만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가게에서 우동은 팔고 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우동 비슷한 다른 면 요리, 그러나 따뜻한 국물은 없는, 그 요리를 먹고 헤어진다. 그리고 작가는 얼마 뒤 친구의 부고를 듣는다. 이후 작가는 우동을 보면 "100%" 그 친구를 떠올린다고 밝힌다. 100%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백에 백이라는 것이다. 우동이라는 글자를 떠올리든 우동을 실제로 보든 우동을 그리든 간에 우동과 관련된 무엇이든지가 나타나면 무조건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친구와 나눴던 하고 많은 추억들 중에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이 우동이라니. 그 음식은 작가에게 친구에 대한 감정이 100% 응집된 무엇인가가 되어버렸다. - 나는 이십대 초중반에 고추참치라는 음식을 처음 먹었다. 언니와 둘이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더욱 철이 없었던 시절이었고 나는 그만큼 철없이 매끼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했다. 내가 이탈리아에 언제 또 와보겠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먹고 싶어, 식도락 여행이라는 것도 있잖아. 언니는 내 떼를 가볍게 일축했다. 여행 경비를 생각해야지, 어떻게 매번 사먹어, 오늘 점심은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참치랑 햇반이랑 먹어. 르네상스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둘러싸인,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분위기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우리는 그렇게 동원참치의 고추참치 통조림 캔을 까고 햇반의 뚜껑을 열고 밥에 참치를 말아먹었다. 이탈리아에서 밥에 참치를 먹다니 믿을 수 없어, 심지어 한국에서도 안 먹어본 거를, 이게 무슨 맛인지도 나는 모르는데, 언니랑 나는 여행 스타일이 정말 안 맞는 것 같아. 투덜투덜 투덜투덜. 언니와 어떤 분위기에서 그 식사를 마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그 때 먹었던 고추참치의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여행 이후로 고추참치를 보면 100% 언니와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린다. 이탈리아에서 어떤 건축물을 봤고 어떤 걸 쇼핑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런 구체적인 장면이 아니다. ‘언니와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키워드 자체, 그 기억의 메타정보 자체가 튀어나오다시피 떠오른다. 역으로 ‘언니와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이 어땠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그 여행에서 고추참치를 처음 먹어봤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기실 이미 몇 번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 결혼을 앞두고 언니와 나는 요사이 서로에게 쓰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여행으로 자리를 비운 어제 저녁에는 언니와 집에서 밥을 먹었다. 호사스럽게도 각자 한 캔의 고추참치를 깐 채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를 했다. 우리 거기에서 고추참치 먹었었는데. 맞아, 나는 그 때 살면서 처음으로 고추참치를 먹은 거였어. 그리고 언니가 물었다. 오늘 저녁이 나중에도 기억이 날까? 그렇게 고추참치에는 한 겹의 레이어가 더 씌워졌다. 그것은 이탈리아 여행 위에 포개진, 목동 우리집에서의 어떤 아주 평범한 저녁이다. 우리는 서로밖에 없는 집에서 각자의 고추참치를 먹으며 앞으로 100% 떠올릴 기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 - 고추참치? 우리 자매는 이탈리아까지 가서 그걸 먹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우리집에서는 무슨 얘기를 했냐면…….
고추참치
동원
전마 @JeoNMa_FOOD
오랜만에 뵙는데 여전히 좋은 글입니다
고리 @ggggg5
@JeoNMa_FOOD 전마님 잘 지내셨나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 고추참치가 맛도리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