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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ju
5.0
16일

"엄마, 덥지? 아침에 뭐 드셨어요?" "전복죽 끓여먹었어. 오늘도 덥네. 점심은 냉면 삶아먹을까 하고 있어. 근데 왜?" "더운데 뭘 또 삶아. 내가 햄버거 사드릴께 ~아빠랑 준비하셔." 아흔 넘은 아버지는 햄버거, 파스타 ...이런 걸 좋아하신다. 최근 몇년간은 파스타보다 햄버거를 더 자주 드신 것 같다. " 뭐 드시고싶으세요?" 여쭈면 "니들 먹고싶은 거 먹어라" 하신다. 그 숨은 의미는 말 만큼 관대하지 않다. 우리 아빤 입맛이 까다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아빠의 마음을 읽고 그날의 기분에 맞는 음식을 고른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처음 생각은 날더우니 에어컨 빵빵한 데 가서 한끼 해결할 셈으로 버거킹을 염두에 두고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부모님을 모시러 갔더니 아버지가 외출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오시는 게 아닌가. 하늘색 체크무늬 셔츠에 모자, 선글라스까지 갖추셨다. 아직 방학인 큰아들도 함께 나온터라 목적지를 버거킹에서 <와동버거>로 변경했다. 큰아들과는 한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와동버거에 가면 와동버거를 기본적으로 먹어봐야한다. 햄버거의 정석이다. 양이 좀 적은 사람은 와동 주니어를 추천한다. 근데 사실 크게 차이를 못느끼겠다 . 버거를 골랐으면 다음은 사이드나 음료를 주문하면된다. 맥주도 있다. 감자튀김과 음료를 함께 먹는다면 세트메뉴를 주문하는게 이득이다. 이번엔 고구마튀김세트도 주문했다. 음식이 하나씩 나올때마다 아들도, 아버지도 음식에 집중. 때마침 멀리있는 조카에게서 좋은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왔다. 엄마랑 내가 통화에 집중하는 사이 음식이 다 나왔다. 비주얼이며 냄새며......통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이모의 도리를 다 하느라 통화에 집중했다. 오랫동안 만난 여자친구와 약혼를 했단다. 버거집엔 손님이 우리말고 한 테이블 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너무나 기쁘고대견한 맘에 큰소리로 축하를 했다. 우리 아버지는 아흔이 넘으셔도 햄버거를 좋아하신다. 이곳 와동버거는 더더 좋아하신다. 통화를 하시는 둥 마는둥. 끝나고 보니 아버지가 감자튀김을 다 드시고 햄버거도 이미 반이나 드셨다. 콜라도 이미 다 드셨다. 나에겐 하늘같고 엄하고, 늘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지금은 아이 돌보듯 신경을 써야하는, 보호를 받던 내가 아버지를 보호한다. 입맛도 까다로워서 식사한번 하려면 기분맞춰드리느라 눈치를 살폈는데, 이제는 그 까탈이 덜하다. 마치 말 잘듣는 아이가 된 것 같아 좋은데, 한편으론 짠함이 느껴진다. 90넘어서 변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 이날의 <와동버거>는 유난히 더 맛있었다. 감튀는 아버지가 다 드실만큼 바삭하고 고소했다. 처음 주문해본 고구마튀김은 생각했던 것과 전혀달랐다. 휴게소에서 보는 노란고구마튀김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는데, 맛도 식감도 훨씬 좋았다. 나중에 고구마 튀김에 맥주를 먹으러 와봐야할 것 같다. 식사를 다 마쳤는데, 오니언링이 궁금해져서 추가주문을 했다. 엄마,아빠는 처음 드셔보는데. 마무리까지. 좋았다. 우리 막내 덕분에 잘~먹었네 하시면 아들 손에 용돈을 쥐어주셨다. 이 광경을 언제까지 더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중에 햄버거 먹을때면 아빠가 생각날거 같다.

와동버거

경기 파주시 가람로21번길 62-2 1층

미오

저… 살짝 눈시울이… ㅠㅠ 저희 아버지도 엄청 나이가 많으신데, 못 바꾸는 것들과 바꾸시는 것들 사이에서 여러 마음이 오가곤 해요. 이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게 (그러나 사실은 신경 써서 입고 나오시고, 고구마 튀김 맛 하나 신경 쓰실 정도로, 모두가 최선을 다해 ‘지금 당장의 행복’을 함께 만드는게) 너무 아름답습니다.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좋은 글 너무 잘 읽고 가요..

maeju

그 마음.... 조금씩 바뀌시는게 감사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미오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라 생각하고, 좋은시간 보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