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구상노사카바(폐업) #오마카세 * 한줄평 : 구상노사카바와 구민술 쉐프의 부활을 고대하며 1.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지은 남산 기슭의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2022년 12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와 더불어 힐튼호텔의 일식부를 담당하던 <구상노사카바> 역시 11월 5일경 문을 닫을 예정이다. 2. 구상노사카바는 이 업장을 이끄는 <구민술 헤드쉐프>의 성을 따 ‘구씨의 술집’이라는 이름을 담고 있는데, 일식 레스토랑 카테고리에서 상당히 독특한 포지셔닝을 점하고 있다. 3.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신라의 팔선이나 롯데의 라센느 등 대중들에게 어필할만큼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의 식당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요, 스시에 특화된 업장도 아니다 보니 의외로 구상노사카바의 인기는 높지 않다. 실제 구상노사카바는 날 것을 다루는 스시파트와 불을 다루는 철판 음식 데판야끼, 덴푸라까지 일식을 광범위하게 다루다보니 오히려 스시 오마카세 매니아들에게 저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 그러나 실제 구상노사카바를 경험해봤다면 이 업장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잘 하기는 어렵다“라는 상식이 무너진다는 것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날 음식과 익힌 음식의 하모니>가 주는 재미와 각 피스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보니 불과 한달여도 채 남지 않은 이 업장의 시한부 생명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5. 난 이 업장을 경험하기 전 <스시 오마카세>라는 개념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스시야의 인기와 함께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굉장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그날 그날 들어오는 좋은 재료를 쉐프의 재량으로 만들어내는’ 쌍방향 맡김 상차림이 아니라 <주방장이 정해진 순서로 내놓는 비싼 코스 요리>의 개념으로 변질되었다. 6. 오마카세는 주방장의 입장에서도 어렵다. 요리를 내놓는 입장에서도 고된 노력이 필요하니 즐기는 이도 높은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오마카세의 원칙>이다. 주방장 입장에서 오마카세가 어렵다라는 의미는 동일한 재료로도 각기 다른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레서피를 터득해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난 여기에 <오늘은 이런 방식으로 어제와 다르게 조리하여 손님에게 내어 드려야지>라는 쉐프의 마음가짐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뻔하지 않게.. 7. 그런데 그러지 않은 업장을 여럿 경험했기에 스시 오마카세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건만, 오히려 다음달 문을 닫는 구상노사카바의 구민술 쉐프에게서 경지에 오른 실력과 마음가짐을 보았다. 다른 음식을 낸다는 것은 <조리 기술>의 영역이지만, 단골손님께 저번에 이렇게 만든 음식을 내드렸으니 다음번에 오시면 저렇게 해서 내드려야지 하는 것은 쉐프의 <마음가짐> 영역이다. 이 2가지를 겸비하기는 전혀 쉽지 않다. 8. 차완무시로 시작하여 츠마미 초반만 해도 역시 호텔 업장은 <클래스가 다르다>라고 생각하였는데, 식사 중반 즈음에 다다르니 내가 경험했던 스시야와 클래스가 다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범주의 식당>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9. 단골을 넘어 이제는 “시간선을 함께 달리는 노신사에게 쉐프가 드리는 혜택“과 즐거운 이야기 속에 오고 갔던 수많은 술잔들 틈에 각 피스별로 품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잘게 채썬 오징어 위에 수북히 올려주신 어란>이다. 10. 조선시대 한양 사대부 잔치에서 <어란>은 귀빈을 접대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나오는 어란의 양에 따라 주인장이 빈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했다고 하니 이 음식이 얼마나 대단한 음식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1. 독도 새우 초밥과 트러플 페이스트를 잔뜩 올린 전복 등 여러 귀한 음식이 많았지만, 그 다음 재미있었던 피스는 데친 쪽파와 조개를 일본 된장에 버무려낸 음식이다. 스시야 오마카세는 날 것을 기반으로 하되 변주를 준다고 해봐야 아부리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삶은 음식을 날 것과 버무려낸다>라는 발상의 전환이 너무 재미있었다. 12. 이 모든 것을 접객해주신 구민술 쉐프는 <매력적>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특히나 업장의 오너 쉐프도 아닌 총괄쉐프임에도 본인의 성을 딴 상호를 받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구나에게 호감을 줄만한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남해가 고향이라는 시골 출신 쉐프에게 매력적이라 느낀 부분은 치열한 요식업 전장에서 수십년 뼈가 굵은 베테랑답지 않게 계산적이지 않아 마음이 가면 무조건 간다라는 부분이 진심으로 와닿았고, 조리 방식에 대한 한계가 없다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13. 업장과 쉐프, 단 한번의 만남이었고 다음 만남은 구상노사카바가 문을 닫고, 다시 둥지를 튼 다음이겠지만 몇 시간의 대화만으로도 그와 다시 만남을 고대할만큼 충분히 빠져들었다. 어제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최은창 선생님과 함께 한 벗들과 즐겁고 맛있는 가을 밤을 만끽하였다.
구상 노 사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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