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흥식당 #삼겹살 * 한줄평 : 서울역에서 만난 묵은지와 돌판 삼겹살의 정석 1. 서울역에서 어느 정도 걸음을 해야 닿는 위치인데, 이미 이른 저녁부터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며 하루의 노고를 풀어내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일부러 찾아온 이는 없어 보이고 동네 사람들인 듯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는 않아 보이는 동네 중장년층의 사랑방 같은 식당, 이미 음식을 경험하기도 전, 이 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첫인상이었더랬다. 2. 고흥식당. 간판 위에 전남 고흥이라는 지명이 선명하다. 서울역 주변에는 유독 지방 지명을 내건 식당들이 많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일대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처음 서울 땅을 밟는 장소였다. 기차가 닿는 곳.. 짐을 들고 내린 곳.. 낯선 도시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 곳.. 고향 이름을 내건 식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호였다. 여기, 당신과 같은 데서 온 사람이 있다는.. 3. 그런데 전라도 지명을 간판에 내거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를 품는다. 단순히 출신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약속이자 기대감을 품게하는 마법의 장치이다. 반찬이 푸짐할 것이라는, 그리고 그 반찬 하나하나에 손이 제대로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그 기대감을 안고 손님들은 식당을 방문하게 된다. 4. 한국 음식 문화에서 전라도가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호남평야의 기름진 땅과 서남해의 풍성한 해산물이 만나는 자리, 그 교차점에서 발달한 전라도 음식은 재료의 풍요를 손맛으로 눌러 담는 방식을 택했다. 5. 특히 김치에서 그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라도 김치가 다른 지역의 것과 구별되는 결정적 이유는 젓갈이다. 멸치젓, 갈치속젓, 새우젓을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이 전라도 김치의 방식인데, 젓갈은 김치의 감칠맛을 단순한 발효의 신맛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젓갈의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깊고 둥근 맛이 쌓인다. 같은 배추, 같은 고춧가루를 써도 젓갈의 종류와 비율에 따라 김치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어버린다. 6. 자리에 앉자마자 묵은지와 쪽파김치가 먼저 나왔다. 고흥식당이라는 상호보다 [묵은지와 삼겹살]이라는 이미 지나가버린 유행어를 보고, 회사 윗사람을 따라 식당에 감흥없이 들어갔지만 빨간 양념이 제대로 무쳐진 파김치를 민난 순간 식당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7. 쪽파김치는 전라도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반찬이다. 쪽파를 젓갈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것인데, 숨이 살짝 죽으면서 파 특유의 알싸함이 발효의 깊이와 뒤섞이면 거의 독립된 음식의 경지에 오른다. 8. 묵은지는 최소 1년 이상 숙성시킨 김치다. 냉장고가 일상이 된 오늘날에 1년을 넘긴 김치는 오히려 귀하다. 발효가 깊어질수록 신맛은 날카로움을 잃고 둥글어지며, 색은 붉음을 잃고 갈빛을 띠기 시작한다. 그 묵은지를 불판 위에서 생삼겹살과 함께 굽는다. 삼겹살이 가열되면 기름이 흘러내리고, 그 기름이 묵은지에 스며든다. 묵은지가 고기 기름을 흡수하면서 무거운 신맛이 가벼워지고, 삼겹살의 느끼함은 발효의 산미가 받아낸다. 서로의 과함을 서로가 덜어내는 구조다. 8. 고기를 얼추 먹고 나면, 이 식사의 진짜 마지막이 시작된다. 돌판에 남은 삼겹살 기름 위에 묵은지를 잘게 썰어 올리고 밥을 얹어 볶는다. 고기 기름을 흠뻑 머금은 묵은지가 밥알 사이사이에 끼어들면서, 아까 불판 위에서 일어났던 일이 다시 한번, 더 진하게 반복된다. 처음부터 이것까지가 한 끼였던 것이다.
고흥식당
서울 중구 만리재로 185 KCC 파크타운 101동 지하1층
찐카페투어 @aintnuttin
진짜 많이 지나가던 곳인데 맛집이었네요
권오찬 @moya95
@aintnuttin 서울역 회의실에서 회의하고 사전 정보없이 방문했는데, 완전 대박 맛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