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 #코우테츠 #야끼소바 * 한줄평 : 서울숲에서 만난 일본 오이타현 철판 요리 1. 서울숲 인근, 좁은 골목 깊숙이 자리한 코우테츠(香鉄)라는 상호부터가 매우 흥미롭다. 일본어 ‘코우테츠‘는 직역하면 ‘강철’이라는 뜻으로 단단하여 쉽게 휘지 않는 금속을 뜻하는 단어인데, 일본에서는 종종 장인의 완고함이나 묵직한 개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보통 ‘강철’이라 하면 鋼鉄을 떠올리기 마련이거늘, 이곳은 첫 글자를 ‘향기 향(香)’으로 바꾸어 놓았다. 2. 철판 위에서 눌어붙는 소스의 그을음과 고기 타는 향, 그 짙은 연기가 스며든 삶의 냄새를 이름 속에 가두려 한 듯하다. 그래서 이 식당은 단순히 일본 음식을 베껴오는 데 그치지 않고, 향과 온도와 기억을 옮겨오는 데 더 공을 들이는 듯 보였다. 3. 서울숲 주변에는 일본 가정식 식당이 적지 않다. 대부분은 도쿄의 세련된 미감을 앞세워, 정갈하고 사진처럼 완벽한 접시를 내놓는다. 그러나 코우테츠가 꺼내든 것은 규슈 동북부, 오이타현의 그윽한 지방 도시의 맛이었다. 온천과 일상의 체취가 스며든, 관광객의 환호보다는 주민들의 저녁 식탁에 더 가까운 음식. 그래서인지 이곳의 요리에는 어딘가 사람 사는 온기가, 아직 식지 않은 체온이 남아 있었다. 4.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자가제면으로 빚어낸 야끼소바였다. 흔히 야끼소바라 하면 축제의 달콤짭짤한 군중의 맛을 연상하기 쉬우나, 이곳의 그것은 달랐다. 철판 위에서 강렬하게 볶아내며 생긴 눌어붙은 향, 소스의 짠맛과 감칠맛이 깊이 배어든 가운데, 직접 뽑아 올린 면의 거친 탄력과 투박한 식감이 살아숨을 쉬고 있었다. 지나치게 다듬어진 도시의 볶음면이 아니라, 지방 도시의 골목 철판 앞에서 후루룩 먹어치우던 그 생활의 맛이었다. 5. 수비드 조리했다는 돈테키 정식은 또 다른 방향으로 기억에 남는다. 부드러운 식감을 기대했건만, 수비드 조리의 일반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대신 두툼한 돼지고기 표면에 새겨진 그을음의 향, 철판 위에서 천천히 졸아드는 소스의 짙은 냄새가, 한 입 한 입을 끌고 가는 힘이 되었는데 아마도 달달하면서도 부드러운 돼지갈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일듯 하다. 6. 의외로 인상 깊었던 것은 함바그였다. 고기의 육즙을 요란하게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뜨거운 진액을 정밀하게 가두어놓은 솜씨가 돋보였다. 젓가락을 대는 순간, 안쪽에서 천천히 번져 나오는 육즙의 온기와, 바깥을 단단하게 다잡은 표면의 대비. 화려하지 않으나 조리의 밀도가 느껴지는, 철판 요리를 다루는 식당의 기본기가 조용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7. 이런 맛은 서울숲이라는 동네와도 묘하게 잘 어울렸다. 성수동과 뚝섬, 서울숲 상권은 예전처럼 가벼운 카페 문화를 향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깊은 취향의 그늘 속으로, 삶의 체취가 배어 있는 무언가로 확장되고 있는 듯 하다. 그저 보기만 좋았던 껍데기가 이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고나 할까.. 8.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후쿠오카의 모츠나베, 오사카의 오코노미야키를 지나, 이제는 오이타의 철판 위에 올라온 저녁 한 끼까지 마주하는 시대가 되었다. 9. 음식이란 본디 먼 지역의 공기를, 그곳 사람들의 하루를, 그윽한 저녁의 체온을 옮겨오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코우테츠는 화려한 일본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철판 위에서 눌어붙는 소스의 연기와, 지방 도시의 허기를 달래던 평범한 저녁의 풍경을, 서울숲 골목으로 조용히 가져온다. 그래서 이 식당은 강철처럼 차갑고 묵직한 존재라기보다는, 오래도록 코끝에 남는, 은은하면서도 진한 향(香)으로 기억될 것 같다.
코우테츠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44-7 1층